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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평창 미탄읍 전설 (다시 태어난 노인)

      2017.09.06 by _(Editor)

    • [이야기] 평창 미탄면 전설 (장자터)

      2017.09.06 by _(Editor)

    • [이야기] 평창읍 전설 (용무리)

      2017.09.06 by _(Editor)

    • [이야기] 평창읍 전설 (중서낭댕이약수)

      2017.09.06 by _(Editor)

    • [이야기] 평창읍 전설 (도임상과 잣죽)

      2017.09.06 by _(Editor)

    • [이야기] 평창읍 전설 (남병산&조판서 묘지)

      2017.09.06 by _(Editor)

    • [이야기] 평창읍 전설 (고목나무 4형제)

      2017.09.06 by _(Editor)

    • [이야기] 평창읍 전설 (절목&항물내기)

      2017.09.06 by _(Editor)

    [이야기] 평창 미탄읍 전설 (다시 태어난 노인)

    다시 태어난 노인 지금 대개 인생환도 한다고 그러지.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고 그러지. 그게 곧이 믿기질 않어. 그게 누구던지, 누구던지 그게 믿기질 않어. 그래, 수청리 어떤 집안에서 오래살던 나이 많은 노인이 돌아 가셨는데 그 노인이 어디가서 태어났다고 하니 경상도 어디 가서 두시 반에 태어났어. 태어났다는데 그 애기가 그 경상도 집안에 태어날 적에 등허리에다가 말이지. 주소 성명을 가지고 태어났어. 그래서 그 분네가 여와서 그런 집안이 있나 하고 문의까지 한 일이 있어. 그런 일두 있어.

    카테고리 없음 2017. 9. 6. 11:34

    [이야기] 평창 미탄면 전설 (장자터)

    장자터 옛날 미탄면 회동리에 많은 재산을 가진 장자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시주를 오자 시주 대신에 거름을 바랑에 넣어 준 채 쫓아 내자 이를 뒤에서 지켜 보고 있던 이 집 종이 장자 몰래 광의 쌀을 꺼내 따라가 스님께 시주를 하였다. 시주를 받은 스님이 종에게 부처님의 자비를 빌면서 아무 날에 얼른 집에서 나오라고 일러주며 총총히 사라졌다. 이 말을 들은 종이 그 날 집에서 나와 뒤를 보니 어느새 집에 불이 나 그 많은 재산을 지녔던 장자가 하루 아침에 망하게 됐다고 한다. 이같은 장자터 전설은 평창읍 천동리, 방림면 계촌리 등 군내 여러 곳에서 전해지고 있다. 미탄 장자터 옆의 바위 벽은 주민들에 의하면 지금도 불에 타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며 그 자리에서 기와 조각들이 출토되고 있다.

    카테고리 없음 2017. 9. 6. 11:32

    [이야기] 평창읍 전설 (용무리)

    용무리 옛날 평창읍 마지리에 가구 수가 3∼4호 정도일 때 이 곳에는 나주 나씨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이 집안에 사내아이가 태어 났는데 사흘 뒤 그 어머니가 산후 빨래를 갔다가 돌아와 보니 방 안에서 군사를 훈련시키는 소리 및 병정소리가 들려 이상하게 여겨 방문을 열어 보니 병정들은 간 곳이 없고 방 안에 불을 밝히기 위하여 둔 솔가지가 와르르 무너지고, 아이가 보이지 않아 사방을 찾으니 어른 키 높이나 되는 선반 위에 아이가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놀라 집안 어른들게 말씀 드렸더니 어른들이 놀라며 우리 집안에 장수가 났으니 우리 집안은 망하였다고 하면서 그 어린아이을 죽이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가족들이 멸문의 화를 막기 위해 어린 아이를 마당에 눕혀 놓고 그 위에 떡안반을 올려 놓아도 죽지를 않자 ..

    카테고리 없음 2017. 9. 6. 11:29

    [이야기] 평창읍 전설 (중서낭댕이약수)

    중서낭댕이약수 유동에서 조둔으로 가는 길목에 "중서낭댕이"라는 곳이 있는데 옛날 이곳에 절이 있었다 하며 이절에서 서남쪽으로 50m쯤 되는 곳에 샘물이 흐르는데 이것이 약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이 곳을 지나던 왜병이 절을 불태우고 온갖 만행을 저지르자 이 절에 있던 스님이 약수가 나오는 샘물을 반석으로 덮어 놓고 표연히 사라졌는데 이때부터 약수의 용출량이 줄어 들었으며 그 후 스님은 어느 곳에선가 왜병과 싸우다 죽었다 한다. 주민들은 지금도 조둔리로 들어가는 길목을 "중서낭댕이"라고 부르며 샘물을 덮었었다고 전해지는 반석이 지금도 있다.

    카테고리 없음 2017. 9. 6. 11:27

    [이야기] 평창읍 전설 (도임상과 잣죽)

    도임상과 잣죽 평창에는 옛부터 잣나무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평창에 원님이 도임하면 도임상에는 반드시 잣죽이 나왔다고 한다. 가뜩이나 험지인데다 토산물이 별로 없는 작은 고을 원으로 임명된 것도 같은 관리로서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닌데 첫 도임상에 죽 그릇이 나왔으니 상을 대하고 앉은 원의 입장에서는 결코 달가울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속으로 은근히 화가 난 원은 이방을 불러 꾸짖곤 하였다. "이봐라! 아무리 가난한 고을이기로 첫 도임상에 죽이 웬 말이냐? 들지 않을테니 상을 물리도록 해라." 원의 이같은 꾸중을 들은 이방이 말하기를 "저희들이 온 정성을 들여 만든 죽이오니 맛이나 좀 보시기를 아뢰오." "죽을 만드는데 온 정성을 들였다? 그래 고을이 그리도 가난하더냐?" "예! 가난하긴 하오나 어..

    카테고리 없음 2017. 9. 6. 11:26

    [이야기] 평창읍 전설 (남병산&조판서 묘지)

    남병산&조판서묘지 평창과 방림, 대화를 경계로 하고 있는 하안미리 남병산(1149m)의 800고지에 조판서 묘지로 알려진 무덤이 있다. 조선시대 병조판서를 역임한 용인인 조판서가 죽자 묘지를 정하여야겠기에 지관에게 물으니 남병산에 묻어야 좋으며 그렇게 하면 50년 후에 그 산에서 은이 산출될 것이라 하였다. 맏아들이 그 위치를 알 수가 없어 북간도로부터 함경북도를 거쳐 강원도 금강산 등 사방을 헤매었으나 남병산을 찾을 길이 없어 할 수 없이 대관령을 넘어 이곳 하안미리 사초거리에 와 여장을 풀고 일박을 하게 되었다. 이튿날 마을 청년 한 사람이 "야! 남병산에 나무하러 가자"고하는 소리를 들은 맏아들이 남병산이 이곳에 소재하고 있음을 알아내고 선친의 묘자리가 될 만한 곳을 찾아보니 과연 명당으로 여겨지기..

    카테고리 없음 2017. 9. 6. 11:24

    [이야기] 평창읍 전설 (고목나무 4형제)

    고목나무 4형제 옛날 옥황상제께서 인간 세상을 굽어보시다가 복을 받을만한 착한 마을이 있어 이 마을에 약수를 내리고, 마을을 지키고 보살피게 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아들 4형제를 내려 보냈다. 그런데 마을을 두루 살펴보니 배와 같은 형국이므로 옥황상제는 아들 4형제에게 고목나무가 되어 배의 삿대 노릇을 하라고 당부하였다. 이에 큰 아들은 길가에 섰고, 둘째 아들은 한뱀이들에 섰으며, 셋째 아들은 안구렁이들에, 그리고 넷째 아들은 자지붕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섰다. 어느덧 세월이 흘려 겨우 한 인물이 나려 할 무렵에 삿대 노릇을 하던 4그루의 고목나무 중 2그루가 늙어 쓰려져 2개의 삿대가 없어지니 배가 제대로 움직여 나아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되어 이제까지 약수리에서 인물이 나오지 않고 마을의 발전..

    카테고리 없음 2017. 9. 6. 11:21

    [이야기] 평창읍 전설 (절목&항물내기)

    절목&항물내기 옛날 마지 본마을 골짜기에 큰 절이 있어 골 이름을 절골이라 했는데 그 큰 절이 어느 때 부터인지 없어지고 그 자리에 깨어진 기왓장만이 남아 있다. 어느 날 이 절의 대사가 동자승을 데리고 이웃 영월땅으로 시주를 가던 중에 동자승이 몹시 목이 말라 주저앉자, 대사는 조금만 참고 산마루에 이르면 물이 있다고 달래어 갔으나 물이 보이지 않아 동자가 다시 물으니 대사가 짚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다 꽂고 염불을 외우자 그 자리에서 돌연 샘물이 솟아 물을 마셨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는 지금도 물이 나오는데 작은 술잔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으며 부정한 사람이 마시려고 하면 물이 나오지 않거나 물 색깔이 변한다고 한다.

    카테고리 없음 2017. 9. 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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