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신문

고정 헤더 영역

글 제목

메뉴 레이어

평창신문

메뉴 리스트

    • 분류 전체보기 N
      • 뉴스 N
        • 강원뉴스 N
        • 평창뉴스 N
        • 주요뉴스 N
        • 영상뉴스
        • 육아,학교
        • 기획&상상
        • 군민정보
        • 의회소식 N
        • 문화소식
        • 읍면,기관 N
        • 종합뉴스
        • 문학광장
        • 동화연재
        • 건강정보
        • 구인구직
        • 광고시안
        • 평창신문
      • 광고&이슈

    검색 레이어

    평창신문

    검색 영역

    컨텐츠 검색

    분류 전체보기

    • [이야기] 평창 용평면 전설 (반쟁이)

      2017.09.06 by _(Editor)

    • [이야기] 평창 용평면 전설 (금당산의 유래)

      2017.09.06 by _(Editor)

    • [이야기] 평창 용평면 전설 (구룡소)

      2017.09.06 by _(Editor)

    • [이야기] 평창 용평면 전설 (폭포소의 거인 발자국)

      2017.09.06 by _(Editor)

    • [이야기] 평창 용평면 전설 (신선바위의 유래)

      2017.09.06 by _(Editor)

    • [이야기] 평창 봉평면 전설 (매지폭포)

      2017.09.06 by _(Editor)

    • [이야기] 평창 봉평면 전설 (이율곡의 잉태)

      2017.09.06 by _(Editor)

    • [이야기] 평창 봉평면 전설 (효부 한씨 이야기)

      2017.09.06 by _(Editor)

    [이야기] 평창 용평면 전설 (반쟁이)

    반쟁이 옛날에 주막집이 있었잖아요. 원주 사령관이 일이 있을 적에 원주서 강릉 가는데 반이 걸린다고 하여 반쟁이라고 했다고 하고, 대관령에도 반쟁이가 있다고 하고 반쟁이는 대관령과 대화에도 있다고 합니다. 반쟁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그전에는 군과 군거리가 구십리라고 해쳐나갔다고 해요. 그런 기점으로 해서 구십 리의 반 쁨 된다고 해서 그래서 반쟁이라고 이름이 불리어 졌습니다. 그러니까 평창군과 강릉이 된다고 예측을 하지요. 그래서 강릉에서 평창이 구십 리, 평창서 영월이 구십 리, 또 영월서 원주가 구십리, 원주에서 제천이 구십 리로 이어집니다. 그 사이에 군과 군 거리가 구십리인데 그 사이가 반쟁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반쟁이가 역전이라고 하죠. 강릉서 구산이 또 역전이죠.

    카테고리 없음 2017. 9. 6. 14:07

    [이야기] 평창 용평면 전설 (금당산의 유래)

    금당산의 유래 쇠 금 자에 무리당 자를 써서 금당산이라 불러요. 요산이 조금 동떨어진 산이라고 해요. 6.25사변 후에 그 산에 불이 나서 여기 전체가 다 탔어요. 폭탄이 떨어지고 날이 뜨거워지니 폭탄들이 다 터져서 불이 났단 말이야. 다른 산은 불이 났는데 이 산만은 불이 안 났단 말이야. 불이 활활 타도 사람이 끄러 가기 전에 저절로 꺼져버려요. 그래서 이곳을 유명한 산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이 안 가도 저절로 불이 꺼지는 산이라 그래서 이 산이 유명한 산이다. 금당산에 산제당이 하나 있는데 관리를 안해서 없어 졌는데 물 하나는 제일 좋죠. 아무리 더운 날 가도 그 물은 손이 시릴 정도로 시원하대요. 그 물을 상수도로 물을 끌어 쓰려고 작정을 했지. 물 있는 곳은 재산 상류지로 지정을 했어요. 거기에는 ..

    카테고리 없음 2017. 9. 6. 14:07

    [이야기] 평창 용평면 전설 (구룡소)

    구룡소 대화면 소재지에서 약 7㎞쯤 걸어가면 개수천에 자리잡고 있는 구룡소라고 불리우는 곳이 있다. 깊이가 5m가 넘는다는 이 소에 얽힌,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날 이곳을 지나가던 장례 행렬이 있었는데 상여를 맨 사람들이 매우 덥고 피로하여 잠깐 쉬는데 갑자기 자리가 꺼지며 깊은 구덩이가 파여 상여가 땅 속으로 깊이 빠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상가에 온 손님들과 상여를 멨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있으려니까 난데 없이 물이 솟아오르고 아홉 마리의 용이 나타나더니 하늘로 올라가더라는 것이다. 그후 이곳에 깊은 소가 생겼는데 이곳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나왔다하여 구룡소라고 부르며 이 마을 이름도 구룡소 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카테고리 없음 2017. 9. 6. 14:06

    [이야기] 평창 용평면 전설 (폭포소의 거인 발자국)

    폭포소의 거인 발자국 거기 가면은 꽤 큰 바우가 하나 있는데 간격이 넓거든요. 거기가 원래 장수동인데 거기서 옛날 할아버지가 소 보그래를 가지고 강을 건널려고 하는데 소거그래면 엄청나거든요. 그러니까 그게 소가 양쪽에 매고 가는 것인데 꽤 무겁거든요. 근데 물을 건너지 못해서 소를 먼저 보내고 자기가 제래보거래를 메고서 건너 뛰었다는 얘기지. 그게 아주 장사라는 얘기지. 지금 가보면 발자국도 자리가 났다라고 그러더라고. 그전에는 좁았는데 지금은 깊어 졌어. 그래가지고 폭포소라고 부르게 됐지.

    카테고리 없음 2017. 9. 6. 14:05

    [이야기] 평창 용평면 전설 (신선바위의 유래)

    신선바위의 유래 용평면 용전리 용전국민학교 학교림을 따라 남쪽으로 500m쯤 올라가면 시원한 정상에 다다르고 이곳에 크고 넓다란 신선바위가있다. 옛날 이 바위의 이름은 화산바위 또는 말바위로 불리워 졌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툭하면 이곳 용전마을에 산불이 일어나곤 하였다. "어이쿠! 또 불이야! 산신령이 노하신게야" "무슨 수를 써야지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일이야" 마을 사람들은 자꾸만 계속되는 뜻하지 않은 화재 때문에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하여 동네의 어른들이 한데 모여 대책을 논의하게 되었다. 마침내 산신령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커다란 제사를 지내기로 합의가 되어 항아리에 소금을 가득 넣어 화산암밑에 묻은 후 정성을 다해 제물을 차려 놓고 빌었다. 정말로 산신령의 영험이 있었는지 그로부터 이곳..

    카테고리 없음 2017. 9. 6. 14:05

    [이야기] 평창 봉평면 전설 (매지폭포)

    매지 폭포 봉평면 덕거리 덕거초등학교(폐교됨)에서 동북쪽으로 약 5Km 떨어진 계방산 줄기에 있는 폭포이다. 이 폭포의 길이는 10m 정도로 폭포수가 흘러 내리는 양쪽으로 미끄럼틀의 내려오는 난간 칸막이 모양으로 바위가 둘러 있어 마치 폭포수가 미끄럼틀을 타는 모습으로 흘러 내리고 있다. 옛날에는 폭포주위에 매화나무가 있었는데 이곳에 신선들이 내려와 놀다가 매화나무의 가지를 꺾어 폭포수에 던졌다고 하여 매지폭포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카테고리 없음 2017. 9. 6. 13:57

    [이야기] 평창 봉평면 전설 (이율곡의 잉태)

    이율곡의 잉태 봉평면 평촌리 봉산서재에는 율곡선생과 華西 李恒老선생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율곡선생의 신주를 이곳에 모시게 된 유래는 바로 봉평이 율곡선생의 잉태지가 되기 때문이다. 일찌기 율곡선생의 아버지인 李元秀공이 인천지방 수운판관으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에 산수가 아름다운 봉평에 4년간을 살았었다. 인천에 있던 율곡선생의 아버지가 여가를 틈타 본가로 오던 중 평창군 대화면 반정(상안미)에 이르렀을때 날이 저물고 피로에 지쳐 하루 밤을 쉬어 가려고 길가의 주막집에 여장을 풀었다. 그날 밤 일찍기 혼자 몸이 되어 홀로 주막을 경영하던 주모의 꿈에 용이 가슴 가득히 안겨 오므로 이상히 여겨 홀연 꿈을 깨고 일어나 앉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주모는 이것이 틀림없이 잉태할 꿈이며 비범한 인물을 하늘이 점지..

    카테고리 없음 2017. 9. 6. 13:55

    [이야기] 평창 봉평면 전설 (효부 한씨 이야기)

    효부 한씨 이야기 성이 한씨인데, 옛날에 여자는 한씨지 이름은 없었어. 청주 한씨 표창장이 지금 있어요. 시방 그 집에 가면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횡성에 의원이 있다고 그래서 횡성에 가서 약을 지어가지고 시방 양구대미라는 재가 있어요. 시방은 차가 댕기지만 옛날엔 걸어 댕겼는데 그 양구대미가 아주 험하고 도둑놈들이 있는 곳이고 보통은 하나 둘은 못댕기고, 이런 험한 산인데 거기를 밤새 넘어 가지고 시아버지 약을 달여 들이고 공경했다 이런 얘기지. 남편이 또 앓아서 사경을 헤맬 때 단지를 해서 피를 흘려 들여서 신랑을 살려서 죽을 사람이 더 오래 살았노라 그것을 봉평의 학자들이 알아가지고 연서로 진정서를 내서 75명이 연서를 내더라고. 시방 다 있어 그래서 그 분이 효부표창을 받았지.

    카테고리 없음 2017. 9. 6. 13:54

    추가 정보

    이미지 넣기

    많이 읽은 기사

    이 시각 주요 뉴스

    페이징

    이전
    1 ··· 1731 1732 1733 1734 1735 1736 1737 ··· 1910
    다음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 주소 foresttory@naver.com
    평창신문 │등록번호 : 강원, 아00236 │발행·편집·청소년보호책임: 김동미 │주소: 중앙로126│전화 (010)4273-5711│등록 : 2018. 3. 20│최종편집:21.4.06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투브 메일

    티스토리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