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곡의 잉태
봉평면 평촌리 봉산서재에는 율곡선생과 華西 李恒老선생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율곡선생의 신주를 이곳에 모시게 된 유래는 바로 봉평이 율곡선생의 잉태지가 되기 때문이다.
일찌기 율곡선생의 아버지인 李元秀공이 인천지방 수운판관으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에 산수가 아름다운 봉평에 4년간을 살았었다. 인천에 있던 율곡선생의 아버지가 여가를 틈타 본가로 오던 중 평창군 대화면 반정(상안미)에 이르렀을때 날이 저물고 피로에 지쳐 하루 밤을 쉬어 가려고 길가의 주막집에 여장을 풀었다.
그날 밤 일찍기 혼자 몸이 되어 홀로 주막을 경영하던 주모의 꿈에 용이 가슴 가득히 안겨 오므로 이상히 여겨 홀연 꿈을 깨고 일어나 앉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주모는 이것이 틀림없이 잉태할 꿈이며 비범한 인물을 하늘이 점지해 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식을 얻을 기회가 왔구나 하였다. 주모는 자신의 처지를 돌이켜보니 혼자 몸이요, 그날 밤 대상이 될 사람은 주막에 묵고 있는 원수공 뿐이라 여러 모로 살핀 끝에 그 분이 예사 사람이 아니므로 여자의 수치심도 잊어버리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 "손님 저를 물리치지 마십시오."하니 놀란 원수공이 "이 무슨 해괴한 짓이요, 내 그대를 행실 바른 여인으로 알고 묵으려 했는데 이러면 되겠오."하고 달래니 "손님 아무 말씀 마시고 하루밤만 정을 맺게 해 주십시오."하고 애걸 하였으나 원수공이 완강히 뿌리치고 말아 주모는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튿날 아침 부끄럽고도 서운한 마음으로 작별을 하는데 원수공의 얼굴에는 범할 수 없는 상서로운 기운이 어려 있는것을 보고 이는 도저히 내 운수가 아니구나 하며 체념하였다. 그 무렵 율곡선생의 어머니 師任堂 申氏는 강릉 오죽헌 언니집에 머물러 있었다. 역시 하루밤 꿈에 용이 가슴 가득히 안겨 오는 꿈을 꾸고 나서 즉시 귀가하려고 하였다. 언니는 며칠 더 머무르기를 간곡히 권하였으나 사임당 신씨는 이를 뿌리치고 그날로 140리 길을 걸어서 집에 돌아와 있던 중 마침 원수공이 도착했다.
신씨는 오랜만에 만난 남편을 대하여 반기기는 고사하고 말도 않고 표정에 변화도 없이 묵묵히 남편을 대하였다. 부인의 성품이 남다름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원수공 역시 아무 말 없이 그날 밤 잠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율곡선생을 잉태하게 되었고, 그 후 9개월만에 강릉 오죽헌으로 이사하여 율곡선생을 낳았다 한다. 한편 원수공은 며칠을 이곳에서 머물다 임지로 돌아가던 길에 또 다시 반정 주막에 들게 되었다. 지난 일을 생각해 보니 사나이 대장부로서 아녀자의 청을 못 들어 준 것이 마음에 걸려 "여보시오 주모, 내 전날에는 대단히 미안하게 되었오. 오늘 밤 당신과 정을 맺을까 하오."하니 "어르신네의 말씀은 대단히 고마우나 지난번 하루 밤 모시고자 한 것은 홀로 사는 아낙네에게 하늘이 점시하신 비범한 영재를 얻고자 함이었는데 오늘 어르신네의 얼굴에는 전날의 상서로운 기운이 없어졌으므로 뜻을 받들 수 없습니다." 하며 말을 이어 "이번 길에 댁에서는 귀한 아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기를 틀림없이 인시에 낳을 것이니 다섯 살을 넘기지 못하고 호랑이한테 해를 입을 것입니다. "하니 공이 당황하여"그 무슨 말이요, 만약 참으로 그러하다면 앞일을 예견하는 당신께서는 그 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알 것이니 제발 묘법을 가르켜 주시오." 했다. 그러자 주모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그러면 돌아가 사람을 천 명 살리는 셈치고 밤나무 천 그루를 심으십시오. 그랬다가 아이가 다섯살 되는 해 아무 날에 금강산에서 어떤 늙은 중이 와서 아기를 데려가겠다고 하면, 아기는 절대로 보이시지 말고 나도 덕을 쌓은 사람이니 아기를 함부로 데리고 갈 수는 없다고 버티시고 덕을 쌓은 것을 보자고 하거든 밤나무 천 그루를 보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아닌게 아니라 그 해 12월 26일 인시에 사임당이 아들을 낳으니 원수공은 주모의 말이 맞았구나 싶어 강릉에서 남쪽으로 백리 쯤 되는 노추산에 밤나무 천 그루를 심었다.
그 후 율곡이 다섯 살이 되는 해 주막 여인이 말한 바로 그날 늙은 중 한 사람이 나타나 "금강산에서 살고 있는 중인데 이댁 아드님을 데려가려고 왔읍니다."하니 원수공이 "나도 덕을 쌓은 사람이니 우리 아들을 데려가지는 못합니다." 하자 중이 "무슨 덕을 쌓았다는 것입니까?"하고 반문했다. 이원수공이 "노추산에 밤나무 천 그루를 심었습니다." 하니 중이 "그렇다면 그것을 보여 주십시오."했다. 이원수공이 중을 데리고 산으로 가 밤나무를 하나하나 세는데 아무리 헤아려도 천 그루에서 한 그루가 모자랐다. 원수공의 얼굴이 사색이 되자 늙은 중이 "한 그루가 모자라니 기어코 아드님을 데려 가야겠읍니다."했다. 그러자 등 뒤에서 갑자기 나무 한 그루가 "나도 밤나무"하고 소리치자 늙은 중이 혼비백산하여 큰 호랑이로 둔갑하여 달아나 버렸다고 한다. 한편 현종 3년 나라에서는 판관대가 이율곡선생을 잉태한 영지라고 하여 이 지역 산과 전답을 포함하여 사방 5리를 하사하고 감관을 파견하여 관리하고 제향을 드리도록 했으나 일제 후 잘 시행될 수 없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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