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제안] 유통도 안보다, AI 기반 식량공급망 혁신이 필요한 이유
매년 수확철이면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밭을 갈아엎는 농민, 무더기로 쌓인 농작물을 실은 트럭이 돌아가는 시장. 풍년이 재앙이 되는 한국 농업의 현실은 단순히 과잉 생산의 문제가 아니다. 예측 불가능한 수요, 단절된 유통, 대응하지 못하는 행정 구조가 반복되는 손실을 낳고 있다.
정부가 AI 기반 농정 체계를 도입하며 작물 등록정보, 기상자료, 생육예측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지만, 이 정보가 시장과 유통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똑똑한 농정’은 반쪽짜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제는 생산을 넘어 유통까지 데이터 기반으로 설계하는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유통 혁신을 넘어, 식량 안보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식량은 총보다 강한 전략 자산이다. 기후 위기, 전쟁, 공급망 차단 등 외부 변수에 따라 식량 수입이 제한되거나 지연되는 상황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생산 기반이 남아 있어도 유통이 마비되면 국민은 식탁에서 곧바로 위기를 체감하게 된다. 식량이 있어도 먹을 수 없는 나라, 수입이 막히면 혼란이 시작되는 구조를 방지하려면, 유통망 자체가 분산되고 예측 가능하며 자립 가능해야 한다.
AI 기반 유통체계는 바로 그 해법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작물 수급 예측, 소비지 수요, 기상자료, 생산 데이터 등을 통합해 공공 정보로 개방하고, 민간 유통주체들이 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정보는 공공이 책임지고, 선택은 시장이 자율적으로 하는 구조. 이것이야말로 자율성과 안보, 효율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유통 개혁의 정석이다.
실현 방식은 명확하다. 첫째, AI 수급정보 개방 플랫폼을 구축해 지역별 품목별 생산·수요 예측 차트를 누구나 열람 가능하게 만든다. 둘째, 농가와 소비지 유통처를 자동으로 연결하는 AI 매칭 시스템을 도입해 계약 재배와 출하를 조정한다. 셋째, 지역 단위 공동선별·공동배송 체계를 스마트 물류망과 연계해 물류비 절감과 폐기물 최소화를 실현한다. 이 세 가지 구조만 정착돼도, 버려지는 작물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유통 혼란과 가격 불안은 완화될 수 있다.
특히 평창군은 이 같은 전환의 실험지로서 적합하다. 기후 변화에 민감하고 작물 다양성이 높으며, 이미 농업경영체 등록정보 정비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여기에 AI 유통정보 개방과 매칭 플랫폼이 결합된다면, 평창은 생산 중심 농업지에서 유통 예측형 농업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예측 가능한 유통망은 국가의 디지털 식량 방어선이다. 유통이 연결되고, 물류가 분산되며, 정보가 개방된 구조에서만 진짜 식량 안보가 가능하다. AI는 단지 생산량을 맞추는 도구가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공급을 유지하고 국민을 지키는 시스템이 될 수 있다.
이제 농업정책은 더 이상 기술혁신으로만 머물러선 안 된다. 유통이 국가안보라는 인식 아래, 정보와 물류, 민간과 공공이 함께 설계하는 예측 가능한 공급망을 만들어야 한다. 그 변화는 지금, 평창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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