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공담(山中空淡)
태양이 작렬하며 쏟아져 내리고 눅눅한 습기로 숨막히는 대도시.
서울은 흡사 거대 공룡과도 같아,
무정하게 삭막한 두터운 거죽을 뒤집어 쓴 체, 인간이라는 태생적 생물들을 길러내고 있다.
한치의 빈틈없는 악다구니 사회 조직망 속에 갇혀 겨우 제 목숨을 건사키 위해
발버둥 치는 가련하고도 미혹한 중생들...
목숨이 소진하여 목구멍에 차올라 찰랑거릴 때, 제 수명을 연장하고자
긴급한 수혈과 투석을 요 할 때쯤,
자연은 늘 거기에 있어 너른 품을 허락한다.
정신의 허약함과 마음의 공허를 채워줄, 도시의 염증에 밥벌이에 맥이 풀릴 때마저
적어도 하루의 산행을 보장받는다.
허파에 숨통이 트이고 다리에 기운이 차오를 때 삶에 기반한 자신의 소명이 어렴풋이
가슴에 떠오른다.
정신과 육체는 긴급한 불가분의 관계.
영혼을 성숙시킴과 영격을 상승시키기 위한 발돋움은 자연과의 합일에 기인함이 다름 아닌즉.
때마침 고즈넉한 암자에 눈 푸른 납자가 있어, 삼엄하고 형형한 눈빛.
호기심에 제 발걸음이 주춤한다.
청정한 계율을 견지하는 저 젊은 구도자는
성불을 기약해 기어코 목말라하는 장엄한 열정이리...
욕심을 덜어내어 허심에 도달하라는 부처의 유촉의 이면에,
성불을 향한 치열한 구도심의 열정 또한 욕망의 다름 아님을,
저 피끓는 파르스름한 청춘은 어쩌란 말이냐~~
고담준언한 고승의 일갈에 젊음을 저당 잡히어
인생의 지침을 정립한 저 앳됨이여!
자연에 순응하고자 제자리를 부여받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여
암자 주변에 함초롬히 피어난 들꽃을 보라.
무거운 경책의 가르침보다 완강한 계율에 얽매임보다 교교한 달빛에 드러난 청초한 잎새,
총총한 별빛을 우러르는 낮은 겸허가
말없이 스스로의 말씀을 키워낸 자연스러움일지니,
이보다 더 고귀한 부처가 따로 존재하였던가!
애써 작위적 몸부림에 지나지 않을 성인의 지침에 속박되지 말고
그저 마음 한 자락 늠름하게 가지를 펼친 저 늙은 소나무에게 기탁 할 뿐이라고.
성글게 익어간 서글픈 인간에게 나무와 들꽃 바위들은 늘 그렇듯 속삭여 위로를
건네오는 듯하다.
포대능선에서 건너보이는 인수봉과 백운대는 첩첩연봉을 거느리며 푸르스름한 안개에
희끄무레하게 빛난다.
나의 생각에 동의하듯 선연해 보이는데 다정하고도 우뚝하다.
방금 이별한 옛 나의 청춘의 그림자가 벌써 아쉬운 뜻은,
똑같이 이십대를 경유해온 추억의 상처만이 가득한 스스로의 아픔이 공명되었기 때문인데,
적막하지만 적요한 암자 경내를 포행하는 쓸쓸한 뒷모습이 그리움으로 변한 탓이리라.
산벚꽃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저녁 어스름에
주체못할 그리움에 가슴에 벌겋게 노을이 지고 눈물이 아롱질 착한 스님이시여~~
'성불하소서.. 부디 성불하소서... ()’
이제는 하산길에 내려서야 할 때 다시금 마음 한 켠을 부여잡는다.
가족과 직장과 사회의 관계들이 인연으로 엮어져 돌아가는 속세를
결코 경원시하거나 염오해서는 아니 되리니,
저곳이 바로 나를 품어 주고 장성시켜준, 필연에 가까운 고맙게도
사람 사는 나의 터전이기에.
그 속에 녹아들어 미소 한 자락 보태어줌이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이고 보면,
이 역시 자연스러움일지다.
문득 몸서리 처지는 그리움이 차오른다.
하산을 재촉하는 뜻은 나뿐만이 아니었음에
저 산은 어서 내려가 네가 서 있는 자리를 지키라고,
언젠가 지치고 힘이 들면 다시 놀러 오라고 떠밀듯이 채근한다.
총총히 지하철 역사로 들어선다.
다시금 도시로 휩쓸려 뻗치어진다.
그러나 오늘의 뭉개어지고 비벼지는 만원의
지하철의 군상들에게 호의를 느끼고 있음인데,
이 또한 자연임을 이제사 알겠다.
다시 도시다.
나는 결국 정처 없이 유랑하는 자유의 유배인.
이상철 작가
충북 옥천 출생.
여행 코디네이터.
2025년 문학광장
소설부문 등단.
문학광장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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