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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평창 진부면 전설 (신효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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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_(Editor) 2017. 9. 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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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효거사


공주 사람인 신효거사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를 혼자 힘으로 모셔야 될 어려운 처지였다. 그럼에도 어렵고 힘든 일을 불평 한 마디 없이 열심히 하였으나 가정 형편은 점점 더 기울어져 갔다. 


하루는 늙으신 어머니께서 병이 심하여 고기 잡수시기를 원하나 대접할 길이 없었다. 그는 곰곰히 생각한 끝에 직접 자기가 산으로 나가 짐승을 잡아다 봉양하기로 결심하고 활을 메고 사냥을 하러 나섰다. 그러나 사냥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지라 하루종일 산을 헤매었으나 도저히 짐승을 잡을 도리가 없었다. 해가 저물어 갈 무렵 돌연히 학 다섯 마리가 머리 위를 날아 가기에 마지막 안간힘을 다하여 이를 겨냥하고 활시위를 당겼다. 그러나 학은 다 날아가 버리고 깃 하나만 땅에 떨어지므로 무심코 이를 집어 눈에 대 보았다. 그랬더니 자기 앞의 모든 지나 가는 사람들이 노루, 개, 돼지 등 여러 가지 짐승으로 보이고 깃을 눈에서 떼면 전과 같이 모두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심히 후회하고 이것이 필시 살생하고자 마음 먹은 업보라 생각하고 도저히 다시 사냥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어머니께 드릴 고기를 구할 수 없게 되자 냇가에 나가 자기의 넓적다리를 칼로 베었는데 많은 피가 흘러 냇물이 붉게 되었다. 


그 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왕의 사자가 이를 보고 이상히 여겨 찾아와 연유를 물었다. "네가 어찌하여 귀중한 몸을 칼로 베어 내느냐?"하니 "예, 실은 어머니께 드릴 고기를 구할 수 없어 제 살이나마 베어 드리려고 이렇게 하였읍니다."했다. 


이 말을 들은 그는 감격하여 궁에 돌아오자마자 즉시 왕에게 이 사실을 아뢰니 이를 전해 들은 왕도 "이와 같은 효성은 일찌기 고금을 통해 들어 본 일이 없도다. 이를 세상에 널리 알려 효행의 귀감이 되게 하라."하고 그로부터 1백섬의 쌀을 하사하여 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하도록 하였다. 신효거사는 효성을 다할 수 있었으나 몇 해 못가 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에 그는 자기 집을 院으로 만들고 출가하여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사방으로 유랑하던 중 아무래도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다운 사람을 만날 수 없어 경주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람 많은 경주에서도 깃을 대고 보면 모두가 짐승으로 보여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명주(강릉)에 이르러 학의 깃으로 보니 많은 사람이 보이기에 "여기가 수도 할 만한 곳이구나" 하고 산세와 순박한 인심에 끌려 여기 저기를 순회하였다. 그러던 중 인품이 좋은 한 노파에게 "이 고장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 어디입니까?" 하니 "여기서 서령(대관령)을 넘어 한참 가면 북으로 뚫린 골짜기가 있는데 그리로 가라." 하고 사라지니 노파는 다름 아닌 관음보살의 화신이었다. 그는 노파가 일러준대로 찾아 가니 성오평에 이르게 되었다. 지나는 사람에게 "여기가 어디입니까?" 하고 물으니 "예, 여기는 신라시대 자장율사에 의해 이룩된 월정사 입구요" 했다. 


그는 월정사에 머물러 수도하였는데 며칠 후 다섯명의 중이 찾아와 묻기를 "네가 가지고 있는 내 가사 한 폭을 어찌했느냐?" 하니 거사가 답하기를 "내가 어찌스님의 가사자락을 가지고 있겠읍니까?" 한즉 "네가 평소 들고 다니던 학의 깃이 내 가사자락 이니라"했다. 깜짝 놀라 거사가 들고 있던 깃을 보니 틀림 없는 가사 자락이요, 말하던 승이 입고 있던 가사의 떨어진 부분에 꼭 맞아 이를 내주었더니 다섯 승은 말 없이 돌아갔다. 거사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비로소 오 대성의 화신임을 깨닫게 되었고 이는 다름 아닌 오대산의 북대 동대 중대 서대 남대 에 상주하는 보살들이었다. 그 후 한때 월정사 법당 안에 오존상을 모신 일이 있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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