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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희 시인] 파독 간호사 일기

뉴스/문학광장

by (Editor1) 2024. 8. 1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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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간호사 일기
                               강정희

신세계 꿈을 향한 머나먼 낯선 자리
나날이 가슴으로 마음을 낮추었다
손과 발 나이팅게일 훈장이듯 박힌 살

지겨운 가난살이 목돈에 귀가 솔깃
짧고도 긴긴 세월 3년의 고용계약
밤이면 꼭꼭 품고 잔 눈물 밴 가족사진

고향이 그리우면 김치를 입에 물고
정체성을 다지려 한복도 입어가며
아득한 하늘을 보며 그리움을 달랬다

전화벨 울릴 때면 가슴이 두근대고
지레 겁 목소리에 붉어지던 눈시울
목메는 아린 기억이 두고두고 서럽다

부르기 힘들다며 본명을 제쳐 두고
하루아침에 둔갑한 우리들의 이름은
검은색 머리 수산나, 모니카, 사비나로

빨간색 호출 신호 맨 먼저 달려가고
미리 톡 근육주사 감쪽같이 잘 놓는
동양의 순 연꽃으로 청순하게 불리며

우리 몸 두 배 되는 독일인의 몸무게
꼿꼿이 허리 펴며 야무진 손끝으로
봄날의 새순 돌보듯 정성을 다하였다

온갖 시름 잊게 한 눈물 피땀 대가는
꼬박꼬박 아우 학비 부모님 가택 적금
몸뚱이 찌그러져도 눈물겹게 뿌듯했다

부어오른 설움을 말없이 다독이며
새벽 날개 치면서 굳세게 내린 뿌리
고생도 세월 앞에선 둥지 친 행복이다

길고 긴 세월이다 묻혀버린 청춘이다
속울음 깨물면서 인내로 녹인 고뇌
질기게 살아온 인생 나이테가 흔들린다

시큰한 눈물 자국 함께 밟고 가자던
희망의 등대 같은 동료가 보고 싶다
무어가 그리 급해서 노을을 건넜더냐

굳어진 등뼈 마디 세월은 물이 차고
시력과 듣는힘은 시나브로 떨어지네
겉으론 멀쩡하여도 욱신욱신 아프다

굽이굽이 오십 년 열정을 불태우며
이 땅에 심어 놓은 코리아의 혼백은
긍지의 백의 천사로 길이길이 빛나리

언젠가 숨소리와 발걸음 멈추는 날
우리의 꿈과 뼈는 독일 땅에 묻히려니
영혼은 숨 죽은 그리운 고향을 하늘거리리

강정희 시인
재독 수필가, 시인, 소설가, 시조시인
황금찬문학상 수필 대상, 소설 대상
재외동포문학상 제18회, 22회, 25회 수상
대구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제2회, 9회 수상 노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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