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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복진 칼럼] ‘공부는 때가 있는데’

뉴스/평창뉴스

by _(Editor) 2021. 5. 3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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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14일 평창군 대화도서관에서 문해교육사(3) 양성과정 졸업식이 열렸다. 평창군 문해교육사 과정은 326일부터 514일까지 매주 금요일 8(48시간) 개최되었다. 수강생들은 몇 명은 졸업의 소회를 글로 적어 졸업생들과 함께 나누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본지의 시민기자로 활동 중인 곽복진 시인도 이날 문해교육사(3) 양성과정을 마치고 졸업식에 참석했다. 곽복진 시인의 졸업에 대한 소회의 글을 본지에 담았다.

 

‘공부는 때가 있는데’

 

곽복진

 

카키색 가방을 어슷하게 메고, 꾹 눌러 쓴 모자의 아저씨!

동네 어귀에서부터 따르릉거리며 자전거 페달을 밟고 달려오는 우체부 아저씨다. 소중한 소식이 들어 있는 하얀 봉투를 받아 들면 동네 어르신들은 반드시 우리 집으로 달려오신다. 전보는 집배원이 그 자리에서 읽어주셨다. 어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시고 받아든 봉투를 뜯어서 큰 소리로 읽어드린다. 낭독해 주시는 내용에 따라서 기쁜 소식이면 함께 웃고, 슬픈 소식이면 같이 울어드렸다. 어르신들은 눈이 밝은 새댁이 이웃에 있어 좋다고 하셨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어깨를 우쭐해하셨다. 일제 강점기에 부모 잘 만나서 공부해서 좋았겠다면서 부러워하셨다. 그러시며 공부는 때가 있는데어릴 때 동생들 돌보느라 때를 놓쳐서 글을 모른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가르쳐 드린다고 하시면 고개부터 저으시며 머리 아파 싫다고 하셨다. 대부분이 문맹이시니 불편함도 부끄러움도 모르고 현실에 처해 사셨다. 편지 읽어 달라고 오시면 어머니와 한참씩 수다를 떨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듣고는 여자가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하셨다.

 

배움은 대를 이었다.

지금처럼 의무교육이란 제도도 없었다. 그 어르신들은 아들은 가르쳐도 딸은 학교를 안 보냈다. 연애한다고, 혹은 글을 알면 팔자 사납다고 입학을 안 시켰다. 가사에 동생 돌봄, 그렇다고 부자가 된 것도 딸이 안쓰러워 전 답을 물려준 것도 아니다. 그저 산림 일구는 밑천일 뿐이었다. 교복 입은 나의 큰언니를 만나면 등에 동생을 업은 채로 큰 물체 뒤로 숨어버린다. 부러워하는 눈빛이 어린 나에게도 역력히 드러났다. 그 언니들은 부모들이 안 가르쳐 준 연애도 잘했다. 부모님께 매를 맞으며 이웃끼리 결혼도 일찍 했다. 신혼부터 밤낮을 모르며 일하여 번 돈을 은행에 저금을 할 수 없었다. 한글도 모르는 이들에게 한문까지 본인이 손글씨를 써야 하기 때문에 은행 문턱이 너무 높았다. 현금을 보자기에 싸서 장롱 속에 넣었다가 가족들에게 절도도 많이 당했다. 또 이웃집에 이자를 놓았다가 떼이기도 수차례 당했다. 산업화 시대를 맞이하여 문맹에 불편함도 많았고, 소외감도 많이 느꼈을 것이다. 참는 것이 익숙해져 어쩌면 한글을 배우고 싶어도 사치란 생각에 또 참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의 어머니처럼 공부는 때가 있는데라고 숙명처럼 때를 놓쳤다고 체념을 해 버렸는지 모른다. 문해학습자들의 시대가 그럴 수밖에 없는 문화의 운명이었다.

지금 농촌을 지키고 계신 그분들이 바로 70~80세 어르신들이시다.

남편을 멀리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보내고 홀로 계신 어르신이 더 많다. 자식도 잘되고 모든 생활은 풍족해졌지만, 어르신의 가슴에는 늘 해소하지 못한 갈증이 남아있다. 문맹의 공허함이 마음 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어, 문해의 갈급함이 더욱 열정적으로 다가온다고, 선배 문해교사들이 이야기한다. 나는 100세 시대에 지금이 때라고 가르쳐드릴 생각이다. 21세기를 접어들며 전국에 문해교육 현장이 생겨서 이분들의 응어리를 풀어드리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 특히 우리 지역은 교육 수혜자가 많다. 글자 앞에서 작아지며 주육이 들던 큰언니 같은 분들에게 한글을 깨우쳐 자아를 길러 드리고 싶다. 이제 문해교사 과정을 수료했으니 선배들이 가르치는 교실에 들어가 현장실습도 받을 예정이다. 그리고 2022년부터 어르신들의 마음을 밝혀드릴 등불이 되리라고.

 

2021510

 

평창신문 시민기자 곽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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