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여름, 처음으로 오대산 자생식물원을 찾았을 때의 설렘을 잊지 못한다. 드넓은 언덕을 뒤덮은 보랏빛 벌개미취, 이름 모를 들꽃과 풀잎 사이로 스며드는 향기,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 그 한 장면이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았다.
그 후로도 몇 번이고 그곳을 찾았지만, 어느 날부터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화재로 문을 닫았다는 소식에, 입구 근처로만 가서 바람에 흩날리는 벌개미취를 바라보다가 돌아서야 했다. 그러던 몇 해 전, 김창렬 원장님이 식물원을 국가에 기부하셨고, 다시 찾은 그 자리에서는 장사익 선생님의 노랫가락이 울려 퍼졌다.
국가 관리에 들어간 뒤 한동안 손볼 곳이 많았던지 다시 문이 닫혔고, 긴 기다림 끝에 축제를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새롭게 단장한 카페 2층에 앉아 창밖을 보니, 여름의 숲과 하늘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카페를 나서 숲길로 접어들자 제일 먼저 노란 마타리꽃이 눈에 들어왔다. 마타리꽃을 사랑한 법정 스님의 글이 떠올랐다.
“내 오두막 둘레는 지난해처럼 노란 마타리꽃이 피어나고 있다. 산바람에 하늘거리는 마타리꽃은 가을 입김을 머금고 있다. 꽃이 피어나기 전에는 마치 기장 조(차좁쌀) 같은 모습인데 꽃이 피어나면 밤하늘에 은하수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꽃 하나하나가 그대로 우주라는 생각이 든다.” - 법정 스님, 「녹슬지 않는 삶 - 들꽃을 옮겨 심다」
꽃 위로 긴꼬리제비나비가 분주히 날아다녔다. 흔들의자에 잠시 앉아 바라본 풍경은, 그저 ‘여기 있음’만으로도 충분한 순간이었다.
돌배나무, 모감주나무, 마가목이 길손을 맞이하는 오솔길을 지나면 산딸나무 터널이 이어진다. 그 너머로 푸른 하늘과 넓은 잔디밭, 그리고 드디어 보랏빛 벌개미취가 언덕 위에 펼쳐진다. 20년 전 처음 마주했던 바로 그 풍경이었다.
꽃은 아직 만개하지 않았지만, 기다림 속에 찾아온 장면은 더없이 소중했다.
사람의 발길이 뜸했던 덕분인지 이곳은 곤충들의 천국이었다. 귀뚜라미, 여치, 메뚜기, 잠자리, 그리고 개구리까지… 작은 생명들이 어울려 사는 그 모습이 오히려 완전한 자연의 풍경 같았다.
“오대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자생식물원’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희귀한 들꽃도 구경하고, 꽃나무 모종도 구할 수 있다. 7, 8월이면 다리 건너에 산수국의 군락지가 있어, 다른 데서는 보기 드문 산수국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법정스님-
수국 군락지는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옆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프리마켓이 열리고, 아이들은 물놀이와 체험 활동으로 웃음꽃을 피웠다.
자생식물원, 그곳에서 내 마음을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20년 전 처음 보았던 새집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주인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시간의 선물이었다.
요즘 많은 곳들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변화를 맞이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숲과 들, 그리고 그 속의 생명들은 서서히 자리를 잃는다.
자생식물원에서 보았던 오래된 새집과 곤충들, 들꽃과 나무들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이 주는 안도와 평화를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국립한국자생식물원,
그곳에서 꽃을 보고 나무를 만지고 바람을 마셨다. 그리고 오래전 법정 스님이 그랬듯, 자연 앞에서 그저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법을 조금 배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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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여행 – 오대산에서 느린 여름을 걷다
평창여행 – 오대산에서 느린 여름을 걷다여름의 오대산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청량한 풍경화입니다.자생식물원에서는 산나리, 마타리꽃 같은 들꽃들이 바람에 하늘거리고, 사철 푸른 이끼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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