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유혹, 그리고 청소년의 무방비한 노출
청소년은 아직 세계를 판단할 기준이 완성되지 않은 시기다. 정체성이 형성되고, 가치관이 자리 잡기 전까지 아이들은 수많은 자극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탐색하는 중이다.
그런 그들에게 SNS의 “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기능은 단순한 추천이 아니다.
유혹이다.
친구 추천 알고리즘은 청소년에게 관계를 ‘선택’할 권리보다, ‘노출’된다는 사실을 먼저 경험하게 한다.
지금 이 알고리즘이 과연 꼭 필요한 기능인가?
이 질문을 우리는 이제 진지하게 던져야 한다.
친구의 친구, 혹은 단지 같은 지역이라는 이유로 추천되는 사람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이버 갈등, 학교 밖 괴롭힘, 사적 정보 노출 등은 더 이상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무분별한 노출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관계의 책임을 수반한다. 하지만 그 책임을 감당하기엔 청소년은 너무 어리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친구 추천 알고리즘에 대한 규제와 설계 개선을 요구할 시점이다.
뿐만 아니다.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플랫폼에서 방송을 송출하는 매체는 아이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들의 언어, 가치관, 정치적 발언은 지상파 방송에선 규제되는 내용일지라도 플랫폼에선 그대로 송출된다.
누군가에 대한 정보, 언행 , 이미지가 필터없이 그대로 ‘공부 대신’ 소비된다.
선거 기간 중, 청소년이 “특정 정치인이 나쁜 사람이래”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때
“그건 어디서 봤니?”
그러면 아이는 “000에서요”, “댓글에서 봤어요”라고 답한다.
그 어떤 공적 검증도 없이 ‘댓글과 개인 방송’이 아이의 정치관과 가치관이 되어버린다. 이는 단순한 정보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기초 체력이 무너지는 문제다.
초등학생 시기까진 부모의 손 안에 있는 자유다. 어느 정도의 통제, 지도가 가능하다. 하지만 질풍노도의 청소년기, 그 시기에 ‘제어’란, 때로는 오히려 아이를 더 강한 반항심으로 내모는 자극이 되기도 한다.
부모의 손을 벗어난 자유. 그러나 그 자유는 아직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한 자유, 그리고 무방비 상태의 자유다.
이 시기에 진짜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은 바로 ‘청소년’이다. 초등학교만이 아니라,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아이들이 이용하는 SNS와 플랫폼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실질적인 보호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 청소년 전용 모드
• 친구 추천 알고리즘 제한
• 콘텐츠 필터링 강화
• 청소년 대상 방송 및 플랫폼 활동에 대한 윤리 기준 제정
이런 현실적인 ‘디지털 보호 안전망’이 절실하다.
아이들의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우리가 ‘제한할 수 있는 책임’ 위에 놓여야 한다.
이 문장을 오늘,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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