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열리지 않는 나무상자

뉴스/문학광장

by (Editor1) 2024. 5. 23. 16:50

본문

300x250
반응형

열리지 않는 나무상자  

                                         김영숙

내가 시집을 가고 난 이듬해
아버지는 사고로 세상을 별거하셨다
숨바꼭질 놀이를 할 때마다 숨었던 다락
어떤 날,  몹시 화가 난 호통에
숨어 울었던 다락에 나무상자가 있었다
친정에 올 때마다 다락을 보면
무서운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물이 났다
기둥 틈새에 숨어 사는 거미를
눈물 가득한 눈으로 보았다

읍내에 새 집으로 이사하고
낡은 것들을 버리고 없앴는데
엄마의 방에 화장대로 쓰이고 있었다
나무상자는 할아버지께서 물려 주신 것으로
근심과 슬픈 일이 생길 때마다
나무상자를 닦고 또 닦으시며
열리지 않는 상자 속을 들여다보시곤
한숨을 길게 내쉬다가도
얼른 닫곤 하셨다
멍하니 바라보는 그 속에는
미처 꺼낼 수 없는 아쉬움과
그 한 곳을 바라보는 기쁨이 있었다

나는 열쇠가 필요했다
한사코 꺼내지 않는 비밀
사정해도 주지 않는 열쇠
은곳대를 물고 있는 잉어 자물통을
열어줄 올케 언니에게
봐 둔 목걸이를 사러 가자고 해야겠다

김영숙 시인
2018년 문학광장 등단
2021년 소년문학 신인상
문학광장 제주지부장
제주 문인협회 회원
제주 애월문학회 회원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회원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