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나의 문학관] 문학광장 김동미

뉴스/동화연재

by _(Editor) 2023. 2. 19. 02:24

본문

300x250
반응형

바지가 줄어든다니, 너가 크는 거지. 어떻게 바지가 줄어들 수 있어. 너 바보냐.
 
유치원 교실 앞을 기웃거리며 유치원생들의 수업이 끝나면 가서 청소도 도와주고 하던
그 시절,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었던 것 같다.
 
그날 나는 교실 앞 복도를 막 뛰어가다가 바지가 작았는지 지나가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휴 바지가 점점 줄어들어.”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야 이 바보야 바지가 어떻게 줄어드냐? 네가 커서 바지를 입지 못하게 되는 거지.”
 
그때 나는 때가 되면 바지가 스스로 자기의 몸을 작게 만드는 줄 알았다. 그래서 때가 되면 부모님께서 줄어든 바지 때문에 새 바지를 사주시는 줄 알았다. 바지가 작아지는 게 아니라 내가 크기 때문에 바지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준 친구와의 일화는 이상하게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르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잊히지 않는 일화로 기억 속에 맴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도 사고가 덜 자란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6년이라는 시절 동안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행복했던 기억이 더 많았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학교에 가려면 강도 건너야 하고, 양옆으로는 논이 펼쳐진 시골길을 어린 걸음으로 반나절은 걸어 다녀야 했는데, 그때 친구들과 함께 학교와 집을 오가며 계절이 지나가는 풍경을 벗 삼아 배운 추억은 차곡차곡 내면에 쌓였다. 어린 시절 길 위에서 배운 시간은 크면 바지가 저절로 줄어드는 게 아니라 내가 커서 바지가 작아진다는 논리를 배우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여름 한낮의 파란 하늘에 염소 구름,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 농사를 마치고 집처럼 쌓아놓은 논바닥 위의 짚더미 속에서 놀던 모든 순간이 모두 배움의 순간들이었다.
 
그 후로도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과 경험은 살면서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나는 늘 숲에서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래서 숲과 관련된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냈고, 숲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숲해설가 공부를 하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나 숲에 가는 시간, 책을 읽는 시간이나 일기를 쓰는 시간은 재미있었지만 나는 왠지 사회생활은 꽝이었다.
 
늘 “나는 이 직업이 맞지 않아. 나는 사회생활은 꽝이야.” 이런 생각을 했다. 남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사니 남 눈에도 이상하게 보였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곳의 직장을 다니면서도 숲에 대한 미련만큼은 버리지 못해 계속 찾았다. 숲에 가면 커다란 나무들이 말없이 안아주는 것 같았고, “너는 왜 그런 옷을 입었니? 너는 왜 그렇게 사니? 등”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도 즐거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말없이 쉬고 싶을 때도 숲을 찾았고, 살다가 힘이 들 때도 숲을 찾았다.
 
나는 늘 숲에 아무것도 주지 못했지만, 숲은 나에게 참 많은 것을 주었다. 초등학교 시절로부터 25년쯤이 지나고 나는 운이 좋게 시골의 어느 도서관에서 숲 스토리텔링 수업을 하게 되었다.
 
그때 1년 동안 숲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하여 한 달에 한 편씩 동화를 들려주는 일을 했는데 그해 마지막 수업을 하던 12월, 그날의 일화를 이렇게 적어 놓았었다.
 
『오늘은 겨울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지역의 아이들하고 마지막 수업을 했다. 아이들은 나를 만나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어느 도서관이나 비슷한 현상이다. 신기한 것은 내 수업보다 아이들이 나한테 이야기하며 더 많이 행복해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가만히 들어주면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마지막 수업이라 재밌었던 수업, 기억에 남는 일 등 그동안 일들을 소소하게 풀어놓으며 이야기하며 과자 파티를 했는데
 
“선생님은 왜 안 먹어요?”
 
라고 하며 내 입에 과자를 아이들이 한가득 넣어주기도 하고 나한테 질문을 하기도 하여서 얼떨결에 아이들과 인터뷰를 했다.
 
“얘들아, 선생님이 지금까지 들려준 동화는 모두 선생님이 쓴 동화였는데 가장 재미있었던 동화가 있니?”
 
“민들레와 흰나비요, 잔잔하고 뭔가 감동적이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어떻게 동화를 쓰게 되었어요?”
 
“음.. 선생님이 어렸을 때 학교가 아주 멀었는데 논, 밭, 강을 지나야 했어..”』
 
나에게는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딸내미가 한 명 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어딜 가지도 못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집이 시골임에도 자주 들로 나가지 못했었는데 요즘은 코로나 덕분에 딸내미와 시골길을 자주 걷곤 한다.
 
지난 3월에는 개구리알을 찾으러 동네 강가에 나갔는데, 강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버들강아지가 한창이었고, 주변에는 어린 아카시아도 있었다. 그런데 그만 발을 헛딛어 아카시아 가시에 손을 찔리고 말았다. 딸아이는 피가 나는 나의 엄지손가락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괜찮은지 묻고는 질문을 했다.
 
“엄마 아카시아는 왜 가시가 있어?”
 
“아카시아는 어렸을 때는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기 힘들기 때문에 가시가 있는 거야.
그런데 이 아카시나무가 어른 나무처럼 크게 자라면 가시는 사라져. 그때는 자기를 보호할 수 있으니까“
 
“엄마, 아카시아는 어렸을 때 말고 컸을 때 가시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어렸을 때는 아카시아가 어려서 아무도 안 쳐다보지만, 이 나무가 아주 멋지게
크면 너도, 나도 베어가려고 하니까 못 베어 가게 가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검은 도로에서 흰색의 지우개는 검은색이다.
 
그리고 흰색의 도로에서 검은색의 지우개는 흰색이다.
 
나는 내가 조금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사회에 적응 못 하는 아웃사이더 같을 때도 많았지만 내면의 그 무엇만큼은 꿋꿋이 지키며 살아온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회가 정해놓은 생각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즐겁게 살아가며 다른 사람들에게 이로운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