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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을 잇는 사람들] 구들문화의 맥을 잇는 사람 ‘임정훈’

뉴스/평창사람

by 편집장 _(Editor) 2020. 10. 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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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문화재 수리기능자 임정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구들에 미쳤다고 할까요? 구들이 좋아 제대로 된 우리 전통구들을 널리 알리고자 구들을 놓는 구들장이입니다. 문화재수리기능자이기도 합니다. 한국전통구들문화보전연구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근 건강과 치유를 생각하는 귀농·귀촌 인구가 늘어나면서 생태주택과 우리나라 전통난방인 전통구들에 관심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생태 난방기술인 전통 구들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특별히 구들 문화를 접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저는 서울에서 LG데이콤이란 통신회사에 다녔는데 평소에 귀촌해서 시골에서 살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취미로 시작한 DIY목공이 나무를 알게 했고 목공을 하며 친환경에 대해 눈을 뜨게 했습니다. 회사를 다니며 2001년도에 목공방의 목공친구들과 처음으로 원주 흥업에 20여평 규모의 중목구조의 황토구들집을 지어봤어요. 그 때는 집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책을 보며 공부하며 집을 짓고 거기에 구들을 놔봤어요. 그걸 하면서 이걸 제대로 해야겠다 생각해서 2007년도에 회사를 관두고 한옥학교에 갔어요. 거기에서 한옥의 목구조를 배웠어요. 그리고 한옥현장을 다니며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구들에 빠져 목수일을 하며 시골 촌로들에 의해 구전되는 구들이야기를 들으며 자료를 수집해가며 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평창으로 귀촌하게 되었고 구들장이로 알려져 몇몇 TV 에 온돌관련 다큐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고 국제온돌학회에서 사무장을 맡아달라고 제의가 들어와 약 4년여 동안 국제온돌학회 사무국장을 지내고 그러던 중 문화재청에서 시행하는 문화재수리기능자 온돌공 자격증 제도가 신규로 생겨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구들의 역사 및 유래가 궁금합니다.

 

구들하면 우리나라의 전통난방이라고 막연하게나마 왠만한 어르신들은 다 아신다고 할 것입니다. 구들 즉, 온돌(溫突)은 우리 한민족의 문화와 괘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유적발굴로 보면 만주 연해주에서 북쪽지역에서 발달한 구들이 한반도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어요. 우리 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친 우리문화의 핵심 가치라고 할 수 있는 구들은 한옥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동북아에서 건축의 형태를 보면 중국과 일본이 우리나라와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만 있는 게 온돌(溫突)이에요.

 

한국 중국 일본의 가옥의 형태를 비교하여 우리 나라의 한옥의 정의를 내리자면 한 가옥내에 온돌(溫突)과 마루가 설치되면 한옥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중국과 일본의 가옥에는 마루는 있어도 구들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한옥을 풀이해보면 고어로 하늘을 뜻하는 마루가 높은 곳에서 내려오고 땅에 골을 파서 놓던 구들이 지표로 올라와 한가옥내에 설치되어 한옥을 이루고 그 안에 사람이 기거하니 하늘과 땅과 사람을 아우르는 집! , 한옥이 되는 것입니다. 마루라는 뜻은 하늘이라는 뜻도 있지만 신성한 곳을 뜻하기도 합니다. 마루는 덥고 습한 지역에서 시원한 곳을 찾으려고 바람이 솔솔 부는 언덕마루, 고갯마루, 용마루의 예를 보면 마루를 이해가기 쉬울 것입니다. 이렇게 시원한 곳을 가옥에 설치한 것이 널판을 이용한 마루 문화가 형성이 된 거에요. 우리나라 온돌(溫突)은 서민들에 의해 시작된 문화로서 그 뿌리가 깊어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온돌(溫突) ,구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들에 의해 전해지면서 땔감이 풍부하지 못하니 적은 양의 땔감으로도 방을 골고루 따뜻하게 하게 할 수 있는 정교한 구조로 발전하며 지금의 우리만의 독특하고 과학적인 구들 구조를 만들어 낸 거에요. 이렇게 이어진 구들이 다양한 형태의 온돌로 발전하여 현대에 이르러서도 전국민이 바닥에 난방시설을 하여 바닥난방을 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고 그러기에 구들의 종주국임을 자부하는 것입니다.

 

<캐나다 구들시공 현장>

우리나라 온돌(溫突)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일제 강점기 시대에 광화문에 조선총독부건물이 지어질 때 즈음 일본인에 의해 우리나라의 경복궁의 동궁전인 자선당이 해체되어 일본에 옮겨지었는데 그때 근대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미국의 유명한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가 일본에 옮겨 지어진 자선당에 설치된 온돌을 경험해 보고 인류가 만든 최고의 난방법이라고 자신의 자서전에 극찬을 했으며 이후로 각 국에 지어진 자신의 건축물에 온돌을 설치함으로 해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세계 백과사전에도 on-dol이라고 등재가 되게 되었습니다.

 

로마에 가면 하이포코스트(Hypocaust)라고 하는 바닥을 덥히는 바닥 난방이 있었어요. 우리나라 온돌이 알려지기 전에는 서양사람들은 바닥난방을 하는 우리나라 온돌를 온돌이라고 하지 않고 한국의 하이포코스트라고 했어요. 하이포코스트(Hypocaust)는 로마의 공중목욕탕에 물도 데우고 바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바닥난방 방식인데 로마가 멸망하며 자연스럽게 없어지면서 유적으로만 남아있어요. 하이포코스트(Hypocaust)의 구조는 로마시민인 귀족들을 위한 귀족들의 난방문화이다 보니 연료인 나무에 구애를 받지 않아 그 구조를 보면 우리나라의 온돌에 비해 단순해요.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구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난방방식으로 적은 나무로도 방에 온기가 멀리까지 골고루 퍼지게 하여 전체적으로 따뜻하게 하는 특별한 구조들을 만들어 놨어요. 그 구조를 들여다보면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지혜로운지를 과학적인 구들구조 하나만 보더라도 증명이 되지요. 이렇듯 서양의 바닥 난방법과 우리의 구들 구조가 달라요. 과학적인 우리나라 구들를 제대로 알릴 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아파트에까지 온돌시스템을 적용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바닥난방을 통칭해서 온돌(溫突)라 할 수 있습니다만 연료의 형태에 따라 몇 가지 구분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물을 덥혀 난방하는 건 온수온돌’, 전기를 이용한 전기온돌’, 전통적인 방식으로 아궁이를 만들어 장작을 이용하여 직화로 불을 떼는 건 전통온돌, ‘구들이라고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들 설치 비용이 궁금합니다.

 

구들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있는 흙과 돌로 구들을 놓을 수 있습니다. 또 누구나 놓을 수 있습니다. 예부터 동네에 손재주있는 분들이나 이런분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구들을 놓아왔지요. 헌데 지금은 그런 흔한 돌과 흙도 주인이 있어 무단으로 가지고 올 수 없기에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해야 합니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옛 말에 구들을 놓으려면 석자 또는 넉자를 파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략 석자는 90넉자는 120인데 평균 1m정도의 공간깊이가 필요합니다. 구들을 놓으실 때 잘 놓은 양반집들은 연상해보면 이해가 빠릅니다. 양반집들은 기단에 댓돌을 밟고 올라 마루를 거쳐 방으로 들어가고 부엌으로 가면 오히려 댓돌을 몇 개단 밟고 밑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이러한 단차를 이용해서 불이 잘 들어가게 구들을 만들었어요. 이러한 양반집처럼 불이 잘 들이는 구들을 놓으려면 비용이 좀 들어요. 구들을 놓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긴 한데 저렴한 비용으로 놓다 보면 석 자 넉 자의 공간 깊이를 만 들 수 가 없어 나중에 불이 안 들이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불이 잘 들이는 적정한 공간깊이를 만들려면 그 안에 들어갈 양이 꽤 돼요. 이렇게 제대로 구들을 놓으려면 현장상활에 따라 다르지만 세 평 기준 800-900만 원 정도(구들만 놓을 때) 들어가요. 옛날의 구들은 고래크기가 주먹 하나둘 들어갈 정도의 크기로 자주 고래가 막히기도 하였는데 지금의 구들 놓는 방식은 현대화된 반듯한 자재를 이용하여 반듯하게 놓기 때문에 비교를 한다면 옛 임금님 사시는 궁궐 구들방의 구들에 버금가게 구들을 놓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들 문화를 전수하셨는데요 전수하시면서 많은 일을 해 오신 걸로 아는데요. 독자분들을 위해 그동안 해오신 일들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황토구들체험관에서 한국전통구들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제가 평창군 용평면 백옥포리 황토구들체험관에서 제가 사무장으로 있으면서 우리나라 전통구들을 널리 알리고자 전통구들학교를 운영하면서 전통구들 교육을 수년간 운영하면서 300여명의 구들교육생을 배출했습니다. 각종 TV에 구들관련 다큐프로그램에도 출연하여 구들을 알리고 또 자라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전통난방문화를 알리기 위해 평창군, 춘전 등 몇몇 중학교에서 한국의 전통난방(한옥과 전통구들) 강의를 했어요. 이러한 활동을 하며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국제온돌학회에서 사무국장을 맡아달라는 제의 받고 4여년간을 소임 맡아 일을 보면서 전국의 내노라하는 구들장인들과 교류하며 견문을 더욱 넓혔습니다. 구들 문화 전수를 위해 구들을 필요로 하는 귀농귀촌 하시는 분들이나 구들 놓아달라고 의뢰가 오면 직접 구들을 놔주기도 하고 있으며 좀 더 내실 있는 우리의 전통난방법인 구들을 연구하기위해 한국전통구들문화보전연구회를 운영하며 전통난방문화인 구들을 알고 싶어 하는 단체가 있으면 전국어디든 가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제대로 된 구들 박물관이나 전시관이 없다는 것이 항상 아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바닥난방인 온돌의 종주국이라고 떳떳이 주장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구들박물관이나 전시관을 지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요. 세계적인 건축가도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난방법이라고 극찬한 세계최고의 난방법인 구들난방 문화를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고 평창의 추위를 전 세계에 알린 2018동계올림픽을 치루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평창에 온돌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구들박물관이 지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해봅니다. 온돌이 우리나라 전반에 걸쳐 퍼져있는 보편적인 문화이지만 추울수록 돋보이는 구들문화컨텐츠를 평창에서 주도적으로 이끌어 평창을 구들문화의 메카로 가꾸어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는 전통문화라고 생각해요.

 

수천년에 걸쳐 우리민족과 함께하며 검증된 온돌문화는 후대에도 지속될 문화이고 평창군에서 온돌문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면 많은 일자리창출과 함께 평창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거에요. 도시에서는 할 수 없는 거거든요. 전주나 경주같은 도시에서 관광객을 유치하는 한옥스테이가 있는데 실질적으로 한옥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전통구들이 빠져있거든요 도시가 아닌 평창에서 실제로 나무를 때는 구들스테이 같은 걸 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현대인들의 화두인 건강과 치유에 대한 문제도 많은 이슈가 되고 있잖아요 이러한 현대인의 각종스트레스와 현대인병은 구들의 온열치유로 확실히 치유되리라 생각해요. 평창군이 산림수도, 동계레저스포츠의 메카 그리고 우리의 전통난방법인 전통구들이 어울어지면 삼위 일체의 힐링 도시로 거듭나게 되며 치유가 필요한 많은 도시인들이 사랑받는 평창이 될 것이고 또 많이들 찾게 될 것입니다.

 

평창에 인연이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회사에 다닐 때 수 년 동안 전국으로 귀농지를 보러 다녔어요. 땅보는 눈은 왠만한 전문가보다 더 나을 겁니다. 귀농 1번지 지리산부터 봉화 영양 단양 영월 문경 평창 인제 양구까지 다 다녀봤어요. 그러다가 우연찮게 지금 살고 있는 마을을 몇 번을 지나다녔죠. 그러다가 우리 마을(의풍포)을 우연히 지났는데 참 좋아 보였어요. 그런데 마침 마을에서 귀농을 장려하기 위한 귀농의 집을 지어놓았는데 마침 비어있어 세를 들어 살 게 되었고 바로 용평면 황토구들마을이었어요. 그때가 2010년도였어요. 그동안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한옥목수일을 하며 구들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황토구들마을이란 이름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래서 정착하게 된 것이 인연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제가 평창에 정착을 하고 마을사무장을 맡아 애정을 갖고 평창문화원에 사료집을 요청해서 평창관련 책을 여러권 보면서 우리마을의 지리와 역사를 익혀 마을해설사로도 활동을 했지요. 그 중에 기억나는 것이 평창군에는 열두 명당이 있다고 해요. 열두 명당은 마을 이름 중에 자 들어가는 곳 여섯 곳, ‘자 들어가는 곳 여섯 곳이 있어서 평창의 육포 육미라고 해요. 그중의 한 곳이 제가 지금 정착해서 사는 속사천과 흥정천이 합수되어 평창강이 시작되는 의풍포(義豊浦)에요. 주변 마을이 흉년이 들어도 의풍포마을은 풍년이 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흉년이 든 마을이 다음해에 뿌릴 씨앗이 없으면 의풍포마을에서 씨앗을 구해갔다고 해서 의로울 의(), 풍년 풍()를 쓰고 마을 앞 강에 나룻터가 있다고 해서 포구 포()를 쓰는 참 아름다운 마을이죠.

 

귀촌을 하셨는데 평창에서 거주하며 어려운 점은 없으신지요.

 

그런 거는 별로 없어요. 평창이 지리나 풍수적으로 좋은 곳이에요. 살면서 문제가 있다면 아직 마음수련이 부족한 저의 성격의 문제 같기도 해요. 전국을 놓고 볼 때 평창이 평균이상의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평창의 12명당 육포 육미를 말씀드렸다시피 전국을 땅 보러 다니면서 많은 땅을 봤는데 백두대간의 등뼈 바로 앞에 있으면서 큰 비바람을 막아주는 곳으로 지형적으로도 평창은 참 좋은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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