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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사람] 사라진 옛 화전민 마을, ‘소개동’을 다시 일궈낸 농부 박용범씨의 평창 천지애 농원을 찾아서

피플

by 편집부1 2020. 5. 1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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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화전민들이 살던 웃음이 열리는 '소개동' 마을> 

평창군 톨게이트에서 국도를 따라 20분 달리면 평창군 대화면에 도착한다. 이름 있는 명산에 둘러싸인 대화면은 동쪽으로는 가리왕산, 서쪽으로는 금당산, 남쪽으로는 남병산, 북쪽으로는 백덕산이 자리 잡아 대화면의 안위를 수호하고 있다. 대화면은 특히 산지가 많고 농경지가 적기 때문에 예전부터 화전을 일구어 살던 화전민들이 사는 마을이 많았다.

 

<화전민이 모여 살던 '소개동' 풍경 >

평창 톨게이트에서 금당산 계곡을 따라 25분가량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산 아래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물구비 마을이 나온다. 아랫마을에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면 등용산 아래 첫 마을 소개동이 나온다. 웃을 소, 열 개 자를 딴 웃음이 열리는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소개동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많은 사람이 도외지로 나가면서 자연스레 마을이 없어졌다. 그러나 예전에는 열다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웃음꽃 피어나는 화전민 마을이였다.

 

2010년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을이 사라진 이곳 ‘소개동’은 오래도록 사람이 살지 않아 풀밭이 무성했었다. 산과 마을의 구분조차 힘들었던 오래된 옛 화전민 마을 터에 다시 사람이 들어와 살 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소개동에서 올해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다는 농부 박용범 씨는 1999년도 처음 이곳에 왔던 날을 이렇게 회고한다.

 

“묵어있던 밭이야, 화전민들이 살던 밭인데. 다 철수하고 경작을 안 하고 그야말로 쑥대밭이었지. 원주에서 부동산을 소개해주시는 두 분하고 같이 와보니 비어있는 집이 세 채가 있더라고 옛날에는 열다섯 채가 살던 곳이었다는 거야.”

 

“그런데 여길 와서 보는 순간,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기가 내 땅이라고 느껴지더라고. 내 안목과 내가 그리는 그림하고 맞아떨어지고 여기 오기 전 1.5킬로는 또 비포장도로였어. 그런데 길은 생각도 안 하고 저 정도는 포장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더라고. 풀이 얽기 섥기 되어서 부동산 두 분 중 한 분은 낫을 들고 한 분은 작대기를 들고 치면서 길을 보여줬어. 아 그분들 따라 올라가려니까 구두 신고 양복을 캐쥬얼 하게 입고 왔잖아. 중간에 내려가고 싶더라고. 그래도 참고 올라갔지. ”

 

"그때 안 올라갔으면 내 땅이 아닌데 올라갔더니 헌 집이 몇 집 있고 내 마음에 드는 거야.

그날 바로 계약했어. 이건 내가 계약하면 되는구나. 느꼈지. 험상궂게 생겼어도 나는 자신이 있더라고. 개발할 수 있다는 안목이 있었지."

 

알프스 산악지방의 아름다운 마을을 보고, 가슴에 품었던 꿈, 평창에서 길을 찾다. 

 

박용범 씨의 농장에는 청년 농업인이 되고자 일을 배우러 오는 젊은이들이 특히 많다. 박용범 씨의 일을 도와주는 곽민규 예비 청년 농업인과 박용범 씨의 귀촌 귀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이 먹으면 산간지방에서 살고 싶다는 꿈이 스위스 알프스산맥에서 싹텄어. 허허허"

 

<스위스 몽블랑 산악마을> 

"원래 나는 충북 음성이라는 촌사람이야. 운이 좋게 대기업에 들어가면서 종합기획실에서 일하는 동안 세계 여러 나라로 돌아다니게 됐는데, 그때 촌놈의 꿈이 많이 바뀌었어.

 민규야(내가 그때) 꿈이 많이 바뀌었어."

 

 스위스 몽블랑 가는 길에 호수가 많고 산악지대에 사계절이 있어 단풍도 들고 호숫가에 꽃도 피고 서양화 그림이 그대로더라고.. 소박한 꿈이었는데, 욕심이 생기는 거야. 나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이런 산악지대 같은 곳에서 살고 싶어서. 땅을 알아보기 시작했지.

 

그런데 내 고향(음성)이 있는 충청도는 이런 곳이 없고 거의 다 도시화되었어. 그때 신문에 광고가 났는데, 젊은이들이 시골의 개발 예정지, 좋은 환경에 있는 전원주택지 등을 소개 하는거야. 땅을 보러 횡성, 주천까지 갔었지. 그런데 맘에 안 들어. 내가 사고 싶은 큰 땅이 없더라고.. 이천 평 삼천 평은 있는데 큰 땅은 없는 거야 나는 싼 땅을 많이 사고 싶었어. 밭을 만 평을 사고 싶었으니까.. 그때 당시에도 땅이 싼 곳은 또 쌌으니까.. 그러다가 1999년도에 원주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어. 원주사람 땅인데 IMF 때 중소기업 하던 분이 근저당 잡혀서 급매물로 나온걸 소개해줬지. 땅을 보러 오는데 포장이 하나도 안되었어. 그때 땅을 6800평 처음에 사고 뒤에 마을 분들 소개로 또 밭을 만이천 평을 사고 산을 만오천 평 정도 샀지.

 

약초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살고 싶었다는 도시인의 귀농 꿈, 사과, 산마늘, 오미자, 산양삼을 심고 가꾸며 비워있던 마을에 웃음꽃 피워

 

<2009년도에 심은 11살 된 사과나무 앞에서> 

2010 3 4일에 왔어. 군에 상담하고 했더니 다들 사과를 장려하셔. 농사를 지으려고 했던 게 아닌데. 약초 키우며 살려고 했던 건데... 사과를 장려하고 지원도 보조도 그때 많이 해줬지.

 

<2009년 처음 사과 나무를 식재할 때>

내려오기 전 2009년도에 처음 500평 정도를 심었어 처음에 사과나무 심을 때 이런 모습이었어. 사과나무 심으면서 일할 때.. 농부의 모습, 그리고 본격적으로 내려와서 2010년도에 천이백 평 심었고. 2년 있다가 천 평 심고 3년 있다가 천오백 평 심었지. 첫 수확은 2013년에 몇 박스 처음 따고 4년 되니 꽤 달렸었지. 그렇게 사과 농사를 시작하고 나니.. 3년 후 군에서 오미자 산마늘을 추천해주더라고.. 그래서 오미자를 천이백 평, 산마늘을 육백 평 심었지. 또 한 5년 있으니 산양삼 농사를 추천해주더라고. 그래서 산양삼은 또 만평 심었어. 그래서 지금은 대농장이 되었지.

 

연고 없는 평창에 처음 오셔서 적응하시기에 외롭지는 않으셨어요?

 

<약용식물자원관리사 교육 졸업식>

나는 여기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이 없어서 교육도 받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지역의 교육이라던가 다양한 모임에 참여를 많이 하고 소임도 많이 봤어. 농촌 관광대학 2, 숲해설가2기를 배워(평창군이 산림수도로 선포되면서) 관광객에게 오대산 등 평창을 알려주는 일도 많이 하고, 사과연구회 회장, 물구비 영농법인 대표이사도 하고 오미자 연구회 감사, 관광대학 회장, 숲해설가 회장도 하면서 선후배들 모임, 동기들 모임 등 층층이 많이 알게 되었어.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니까 아는 분들이 많아지고 만나면 반가워해 주시고 그러지. 그게 평창군에서 편안하게 정착하게 된 동기지. 평창군 군 정책도 그런 쪽으로 많이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하게 되었지.

 

 끊임없이 배우고자 한 열정과 노력이 지금의 평창천지애농원을 만들다 

 

<평창 천지애 농원의 사과밭 풍경>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그동안 사과 대학을 두 번 다니고 올해 또 다녀. 그렇게 배워도도 모르는게 많아. 그래서 배우는 게 좋고, 젊은 사람들과 같이 배우면서 어울리는 게 좋고. 배워서 습득하고 적용하고 또 배우고 그러지. 또 여러 교육을 엄청 많이 받았어. 미래교육원. 강원도 평창군청 등 스마트폰. 양봉 교육 등 많았지. 강원도민이면 누구나 무료로 수료가 가능하고 숙식도 무료 수당까지 주고 교통비도 줬어. 수료증 주면 교통비를 줘. 그렇게 좋은 나라가 어디 있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해발 700고지! 평창군 사과라서 더 맛있다고 하는데,

평창 사과 칭찬 좀 해주세요!

 

<천지애 농원의 사과> 

고랭지 사과라 병충해가 적어서 약을 훨씬 덜 주지. 벌레는 추운 곳을 싫어해서 덜 있어. 밤에 춥기 때문에 여길 곤충이 싫어해. 그래서 친환경 재배가 가능하지, 일교차가 크면 모든 작물이 맛있어. 배추도 그래서 고랭지배추도 아작아작 식감, 평창 사과는 씹는 식감이 좋고, 향미가 좋고. 향의 풍미, 당도는 기본 베이스, 풍기는 향미. 저장성이 길어서 특히 구정 후에 강원도 평창 사과는 더 인기가 높아. 저장성이 낮으면 식감 맛이 떨어지기 마련이거든. 장기저장에서 인기가 높아. 맛의 보존성이 길고. 병충해가 적고. 식감 향미가 좋아. 고랭지일수록 당도가 높아. 또 올림픽의 개최지로 세계적인 도시가 되었는데, 특히 사람이 살기 좋은 happy 700고지는 사과나 배추 같은 고랭지 농산물도 환경적으로 맞아 맛이 일품이기 때문에 평창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 많이 찾아주지.

 

사과 농사를 지으시며 사과연구회 회장도 하시며 다양한 일을 추진 하셨네요

 

2016년에 내가 평창군 사과 회장을 했는데 8개 읍면에 사과연구회 회장을 했어. 나를 사과 회장으로 추천해서 내가 추천받아서 회장이 되었어. 외지에서 온 사람을 인정해주는데 허락을 안 할 수가 없었지.

 

사과연구회 초기 회장을 역임하며 평창 명품 사과의 브랜드화 추진

 

<평창 사과연구회에서 개발한 사과박스>

회장이 되고 평창 사과 마케팅 전략으로 기술센터에서 통합해서 사과박스도 통일하면서 평창 사과 브랜드화 하는 일을 먼저 추진했어. , 명품사과박스를 하나로 통일했지. 군에서도 통합되다 보니 관리하기가 훨씬 수월해졌지. 통일 박스로 할 테니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했더니 군에서도 망설임 없이 이듬해 예산에 반영하겠다고 해주셨지. 사과박스를 통일 박스로 하기 위해 디자인을 위해 여러 차례 모여서 의논하고 만들었어, 그다음 회장이 되면서 박스 디자인이 또 한번 바뀌었어.

 

평창 명품사과의 브랜드화, 사과 품평회 추진

 

<사과 품평회에서>

사과 품평회를 추진했어. 품평회 첫 번째에는 조용주, 백옥연 씨가 1, 내가 두 번째 회에서 일등 사과 왕이 됐지. 내가 회장일 때 사과 품평회를 삼 년하고 이제 안 하게 되어 아쉽지만, 작년에 부산에서 열린 대한민국 과일 산업대전 대표 과일 선발대회에서 나는 안 나갔지만 봉평면 유포리에 조용주, 백옥연씨 사과가 대상(국무총리상)을 받으면서 평창 사과의 브랜드 가치가 또 한 번 높아졌어.

 

 

평창 사과 3無 착즙, 70도 저온 살균 사과즙 공장 가동

 

<사과연구회에서 가공하는 3無 사과즙>

평창 사과연구회 회장을 하면서 예산을 오천만 원 들여서 방림에 공장을 추진했어. 방림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젊은 분들이 가공공장을 만들었어. 이 가공공장은 평창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신청하면 사과를 가지고 가서 공장에서 착즙을 할 수 있어. 방림에 있는 가공 착즙 공장은 아주 청결하게 유지되고 있지. 또 사과즙이 중탕이 아니라 파쇄기가 있어서 사과를 파쇄 후 착즙하고 70도에서 저온살균을 해. 끓이지 않기 때문에 더 좋지. 3제도로 과당, 방부제,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아서 건강에 더 좋아.

 

현재 평창군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가구 수는 얼마나 되나요?

 

평창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가구는 오 년 전 회장을 할 때 150 농가 정도가 되었어. 지금은 외지에서 귀농해 사과 재배를 하는 분들이 많아.

 

무농약에서.. 저탄소, GAP 우수농산물 인증까지..

 

무농약을 5년 하고 포기를 했어.

무농약 6년 차에서 정부에서 살충제 교란 사건이 크게 보도되었어.

과수원 인근 양계장. 과수원 하던 자리에 양계장이 생기면서 충청도의 계란에서도 살충제 성분 검출되었지. 유기농인데도. 그때 전국적으로 무농약, 유기농, 농사 전수 일체 조사를 했는데 조금만 나와도 아웃되었지. 242가지 성분 검사를 하는데 거기서 두 가지가 미미하게 나온 거야. 유기농 인증을 다시 하려면 5년이 지나야 해. 그래서 유기농 인증을 하는 건 포기하고 GAP (우수농산물인증) 저탄소 인증을 획득했지.

 

무농약인증이 안되었는데.. 그래도 무농약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시는지..

 

그전에는 사과 농사지을 때 고객을 생각해서 무농약을 소신 있게 했지. 이제는 그렇게까지는 못해도 저탄소, 우수농산물 인증을 받아서 저농약으로 하고 있어. 무농약으로 했더니 상품이 이쁘게 안 나오고 소비자들이 인정을 안 해주는 거야. 무농약, 유기농, 친환경 판매할 때가 없는 거야. 일부만 찾는 거야. 농민들에게 유기농 무농약 친환경 그만큼의 노력에 대한 지급을 할 수 있는 사회 여건이 안 되는 것도 문제지.

 

 그래도 농산물을 건강한 먹거리로 키우겠다는 소신은 변함이 없어. 건강한 퇴비도 늘 넉넉히 주고 있고,

 

<산에서 나오는 약수 저장통>

산에서 샘솟는 건강한 약수, 옛 화전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던 약수를 받아서 사과에게 주고 있어. 

 

못생긴 사과가 더 맛있다는 것을 고객들이 알아줬으면.!

 

<사과품평회에 출품해 1등을 한 천지애 농장의 사과>

친환경은 가격을 노력의 대가만큼 인증해 줘야 하고 소비자도 꺼칠하고 못생겨도 친환경을 인정해야 하는데.. 친환경 원하면서도 예쁜걸 찾는 거야. 그게 답답한 거야. 지금도 마찬가지야. 꺼칠꺼칠한 게 친환경이라고 찾는 거야. 그래도 최대한(농약을) 적게 주지. 환경 자체가 산속에 있고 오염되지 않아서 그게 가능하지.

 

천지에 농장의 사과가 많이 알려진 계기가 있을까요?

 

인근 농가와 몇 킬로 떨어져 아무도 살지 않던 고립된 옛 마을 소개동이 한몫한 거 같아.

옛 화전민 밭을 자연 그대로인 상태에서 친환경 재배를 시작했는데 주변의 과수농장과 멀다 보니 병해충이 옮겨오는 것도 덜했지. 청정한 고랭지에서 친환경 재배를 한다는 소식이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했어, 결정적으로는 품평회에서 사과왕이 되면서 방송국에서 작가들이 많이 문의해 왔지. 2015년도에 나오기 시작해서 청산별곡, 여섯시 내고향 등 삼 년 동안 여덟 개 방송이 나오고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지.

 

유통은 주로 어떻게 하고 계세요?

 

<현대백화점에 납품하기 위해 사과 포장을 하고 있다>

무농약으로 현대백화점에 납품을 3년 했고 지금은 저탄소, 우수농산물인증으로 납품하고 있지. 인증을 안 받으면 납품을 못 해. 2015년도부터는 삼성전자와 자매결연을 하여서 납품하기 시작했지. 지금까지 두 군데 대기업에 납품하고 일반 쇼핑몰에 나가고 직거래가 특히 많아. 우리 사과를 끝까지 먹고 싶다고 언제 품절되냐고 물으시며 끝까지 찾으시는 분들이 많아.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노력하면 그 가치를 고객들이 알아주시고 결실을 보는 것 같아. 직접 연락해주시는 직거래가 많고, 유통은 블랙타이거(쇼핑몰)에서 판매를 하고 있어.

 

평창 산양삼 농사도 만오천평 짓고 계시다고 하셨는데 소개좀 부탁드려요. 

 

<박용범 대표가 8년근 산양삼을 들어 보이고 있다>

현재 이 곳 평창 천지애 농원의 만오천평의 산에 산양삼이 심겨져 있어. 평창은 지역적으로 표고 700M 이상이 전체 면적의 65%를 차지 함으로서 전 세계 유레를 찾기 힘든 산양삼 최고의 재배 적지 이고, 이는 조선시대 출입조차 금지 시키며 산양삼 주산지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삼삼 봉표가 가리왕산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역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하게 보호했는지 알 수 있지. 

 

<천지애 농원의 산양삼>

특히, 산양삼 재배지는 해발 700M이상의 높은 산지에 조성되어 있으며 사계절이 뚜렷하고 식생대가 인공림이 아닌 원시림으로 부엽토 층이 두터워 산양삼의 맛과 향, 효능이 뛰어나.

평창 산양삼은 마치 산삼을 감청하듯 전문 감정위원의 철저한 검수과정을 거쳐 이를 통과한 산양삼만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데
특히 천지애 농원 산양삼은 지난해 삼성전자에서 많이 구입해주셨어. 평창산양삼의 가치를 알아보고 구입해 주시는 분들이 늘어날 때 정말 보람되지. 

 

평창에 귀농하시고, 성공하신 사례가 되셨는데,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평창 천지애 농원을 방문한 가족과 함께> 

"사라진 옛 마을 소개동, 다시 예전처럼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가득한 곳으로 채워나가고 싶어"

 

예전에 열다섯 가구 살던 이 소개동 마을에 지금은 우리 가족이 유일하게 사는 주민이야. 이곳에 다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그런 공간을 가꿔나가는 게 나의 꿈이야.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힐링하고 치유하고 돌아갈 수 있으면 참 좋겠어.

 

<소개동에 들어와 처음 짓고 6년을 살았던 황토집>

처음 이곳에 와서 황토집을 짓고 6년을 살았어. 도시의 소란을 모두 내려놓고 이곳으로와 황토집 거실에서 바라다보이는 저 푸른 자연 풍경과 그 속에서 흙을 일구며 사는 삶이 정말 행복한 거야. 이제는 내가 이곳에서 느끼고 경험했던 행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치유농장을 하며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귀농을 희망하는 청년농업인들에게 희망이 되길..

 

<천지애 농원에서 농장일을 배우고 있는 예비 청년 농업인 곽민규청년과 박용범 대표>

청년 농업인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어. 젊은 분들 귀촌 귀농하는 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우리 농장을 열심히 해서 주변 사람들이 와서 보고 배우기도 하고 희망을 주는 지금 그런 상태이기도 하고 노하우라고 할 건 없지만 나의 모든 경험담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오픈해 준다고.

 

현재 천지애 농원에 창업 예비 청년으로 와 있는 곽민규 청년은 평창군을 찾아 선진농가 '천지애농원'을 소개받았다. 서울 강남구에 살고있다는 곽민규 청년은 어렸을 때 부터 외국에서 유학을 하고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든든한 청년이었다. 그런데 곽민규 청년의 진로선택은 남들과 조금 달랐다. 어렸을 때 부터 외국의 '자연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느긋하지만 행복한 풍경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일찍이 돈보다는 인간다운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청년농업인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평창에 온지 이제 한 달 되었다고 하는 곽민규 청년은 벌써 농원의 일상에 적응되어 행복한 모습이었다. 곽민규 청년은 일찍이 부모님께서 사 둔 평창의 삼만오천평 땅에 무엇을 심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곽민규 청년처럼 이제는 농촌을 찾는 사람들도 다양해지는 등 선진국의 뒤를 잇고 있었다. 부와 명예 보다 가치있는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을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찾아가는 청년을 보며 우리나라 농촌의  앞날이 밝게 다가왔다. 

 

앞으로도 평창군의 인구증가 및 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길..

 

<평창군 귀농 귀촌 희망자를 위한 강의를 하다> 

평창에 귀농 귀촌이 적으면 인구가 계속 주는데 외부에서 인구 유입의 동기부여를 주고, 성공사례로 희망을 주고 싶고 모범이 되는 농장을 만들고 싶어. 그런 꿈이 중요하고요 나도 행복하고 주변 분들도 행복하고..

 

이왕 내가 평창군에서 도움을 받고 행복하게 사느니 나만 행복하면 뭐해 다른 도 외지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먹거리만 좋은 거 주는 게 아니라, 평창에서 이런 지원 받고 즐겁게 사는데 외부에 많이 알려서 나같이 귀농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면 좋잖아.

 

, 현재 귀농·귀촌 협의회 수석부회장을 하는데 귀농한 귀촌한 분들의 애로사항을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싶고 봉사의 일원으로 선도 농가 역할을 하며 후배 연수생들 지도해 주고 싶고 평창군 인구가 계속 줄어들어 걱정인데 평창군의 인구 유입에 기여를 하고 싶어.

 

개인적으로 소박한 꿈은 귀농·귀촌 사례집을 쓰고 성공 사례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고싶어.. 

 

개인적으로 소박한 꿈은 내가 평창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귀농·귀촌 사례집으로 써서 강의를 필요한 지자체 단체마다 하고 싶어. 우리 농장을 시작부터 귀농 귀촌 시작해서 그나마 성공적으로 꾸려나가고 대기업도 납품해 나가고 그런 것을 정리해서 전수하고 싶어.

 

천지애 농원의 다른 이름, 모두가 마음껏 웃다갈 수 있는 치유의 장이 되고 싶어

 

< 천지애 농원의 통나무집>

옛 마을 터이다 보니, 보다시피 땅이 넓고 길도 잘 되어있어. 큰 마을이 적적하기도 해서 소개동에 살면서 곳곳에 집을 세 채를 지었어. 처음 땅을 사고 2002년도 부터 황토집 짓는 기술을 횡성으로 배우러 다니면서 그곳에서 알게된 기술자 분들과 황토집을 짓기 시작했어. 그렇게 지은 황토집은 내가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 6년동안 평창에 올 때 마다 살던 집이야. 두 번째로 지은건 2012년도에 지은 통나무 집이지. 이곳에서는 종일 음악도 나오고. 밖이 훤히 내려다보이기도 해서 아내가 아주 좋아하는 곳이야.

 

<평창 천지애 농원 박용범, 김서연 부부>

2010년도에 귀농을 할 때만 해도 아내는 오기 싫어했어. 도시 생활에 익숙하다 보니 시골중에서도 아무도 살지 않는 이 시골마을이 아내에게는 탐탁치 않았을거야. 나 혼자 내려와서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봉사활동도 하고 좋은일도 많이 하며 이곳을 일궈 나갔지. 그렇게 7년을 혼자 '소개동'을 마을처럼 다시 만들자, 아내도 감동을 받고 2017년도에 시골에 온거야. 그때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내를 위해 내가 현대식 집(살림집) 을 한 채 더 지어 아내에게 선물해주었지. 

 

<평창 천지애 농원을 찾은 체험 부부>

혼자 있을 때 이곳 생활이 행복했다면  지금은 아내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이루게 된 것 같아. 혼자 있을 때 보다 둘이 이 소개동을 일궈 나가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 순간이 보람이고 행복이지.

 

이곳 소개동 천지애 농장은 현재 평창군 그린투어 사업단에서 특화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선정되어 있기도 한데 옛 마을 터이다 보니 땅이 넓고 천천히 체험도 하고 둘러보기도 좋아서 집 대신 사람들이 찾아오면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는 이런 공간(데크)들도 많이 만들어 두었어. 앞으로는 이 천지애 농원이 체험뿐만 아니라 숲체험은 물론 지친 몸과 마음을 쉬었다 갈 수 있는 쉼터 같은 공간이 되어주고 싶어. 

 

<천지애 농원에 체험을 온 손님들과 함께>

평창은 청정한 자연과 아름다운 경관, 대대로 이어온 전통문화와 공동체 기반의 생활양식, 고랭지 농산물과 산채를 이용한 건강한 식문화 등 도시민들에게 가치 있는 여가를 제공할 수 있는 다채로운 매력을 품고 있는 고장이다. 평창군에서는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농사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평창의 마을을 여행과 접목한 그린투어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천지애 농원의 오미자> 

천지애 농원에서는 사과, 오미자, 오디 등을 친환경으로 키우고 있고, 신선한 과일과 약초로 효소를 직접 채취하여 와인도 많이 담가두었는데 이곳에 오면 계절 따라 이런 체험을 누구나 할 수 있어. 과일 따기 체험은 물론 뽕 오디, 복분자, 산 복숭아 효소 만들기, 와인만들기, 황토집 온돌 체험방 체험을 질길 수 있지.

 

<천지애 농원의 효소 & 와인> 

황토집은 현재 실내를 조금 수리를 해서 차도 마시고 명상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꿀 계획이야. 구들로 되어있어서 나무를 떼면 이곳에서는 찜질을 할 수 있어. 황토집 온돌 체험방은 옛날 방식으로 구들에 불을 때는 곳으로 방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효소나 차를 마시며 명상도 하고 마음도 힐링하고 찜질도 할 수 있어. 이곳에서의 힐링이 꼭 필요하신 분들께는 불 떼고 찜질하고 갈 수 있도록 멍석도 더 준비해 두었지.

 

<천지애 농원의 통나무집에서 체험을 온 손님들이 환하게 웃고있다> 

마을 길을 걸어 다니면 한 시간이 걸리는데 마을이 넓어도 주민들이 살던 마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토목공사를 많이 안 했어. 나는 늘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옛 시골길을 걸으며 산책도 하고 자연도 느끼며 황토 찜질도 하고 찜질복 입고 실외의 데크도 많은데 소나무 아래 데크에 둘러앉아 담소도 나누는, 그런 소박한 소개동 마을을 꿈꿔. 소개동에 예전처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면 얼마나 좋겠어.

 

한 사람의 노력이 일군 천지애 농장의 주인공 농부 박용범씨는 사라진 옛 마을 소개동을 일구고 다시 사람의 온기로 채워나가면서 평창사람이 다 되었다. 박용범 씨에게 평창 살면서 가장 행복한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평창와서 가장 좋은 점 한 가지는 좋은사람들을 만나 함께하는 게 내 인생 후반의 가장 큰 자산이야.

 

내가 내년 칠십인데 평창 와서 좋은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외롭지 않게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게 된 것이 내 인생 후반의 가장 큰 자산이야 희망적이고 즐겁지. 억만금보다 주변사람들과 믿음을 갖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한 거야. 서로 존중해주며 서로 오라 가라 카톡으로 늘 연락하고, 나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많고 내가 좋아하는 분들도 많고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혼자 아무리 잘해도 뭐 하는 거야. 주변 사람들 이 없으면 소용없어.

 

사실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 제일 걱정하는 게 시골에 오면 외롭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현지에 적응하고 잘 지낼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많은데, 꿈이 있다면 나처럼 이렇게 와서 사람들에게 도움도 받고 시작할 힘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나는 귀농 귀촌을 희망하는 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마지막으로, 평창군에게 바라는 점, 귀농인으로서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은 점이 있으시면 한 말씀 부탁드려요.

 

농사를 짓는 농가들이 요즘은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SNS 활동도 열심히 해서 여러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을 많이 하고 있는데 소통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농사짓는 모습을 보고 체험을 하러 많이 찾아와. 이런 소규모의 농장들도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편의에 좀 더 신경을 써주고 지원을 해 주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도 농사를 짓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힘이 될 것 같아.

 

평창군에서 체험 마을 특화체험 등 많은 부분 관광자원 개발에 노력을 하고 있는데 사실 체험 마을은 다 건물 위주이고, 건물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 많아. 앞으로는 지역마다 뭘 지어주는 건물 짓기 위주의 사업은 그만하고 지역의 소규모 관광지나 농가들을 이용한 웰빙 관광으로 소규모 팜파티 등의 지원도 신경 써주면 좋겠어.

 

http://www.happygreen.kr/village/index2

 

평창체험여행

평창식물원은 해발 1040M 보습봉 중간 6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식물원입니다. 600여 종의 한국자생식물을 길러 10년 동안 준비해 문을 열었습니다. 평창식물원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아름다운

www.happygreen.kr

 

<천지애 농원의 산마늘 밭> 

잊혀져 가던 대화면의 옛 마을 ‘소개동’을 일구고 농사를 짓는 천지애 농장에서 더이상 화전을 일구며 사는 옛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옛사람들의 정기가 내려오는 텃밭에는 매년 맛있는 사과, 오미자가 주렁주렁 열린다. 그리고 매년 농사가 풍년을 맞는다. 

 

마을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 소개동 마을, 천지애 농장의 척박한 땅에서 이처럼 맛있는 사과가 나오고, 맛있는 오미지가 나오고 매년 농사가 풍년을 이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곳을 방문했던 나는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천지애 농원을 찾아주신 분들> 

소개동 마을에서 오래전 농사를 짓던 옛 화전민들이,

한 때는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소개동’이 온통 풀밭이었을 때 찾아와 다시 땅을 일구고 많은 사람과 나누고자 노력하는 박용범씨를 돕고 지켜주기 위해 복을 내려준 것은 아니었을까?

 

척박했던 땅에 이제는 십 년 된 사과나무가 가득하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리듯이 앞으로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주렁주렁 이어져 날마다 웃음꽃 활짝 피는 소개동 마을, 천지애 농장이 되기를 바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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