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질문 하나가 형사사건이 되는 사회, 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천천히 출차 중이던 저는 좌측에서 갑자기 진입한 차량과 경미한 접촉사고를 겪었습니다. 저는 보험사에, 상대방은 경찰에 연락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상대에게 “천천히 오셨나요?”라고 묻고, “네”라는 답을 들은 후에도 상대는 병원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조용히 물었습니다.
“천천히 오셨다면서요. 그런데 병원에 갈 정도셨나요?”
그게 전부였습니다.
싸움도, 고성도, 위협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이 짧은 질문을 ‘다툼’으로 판단하고 사건을 형사사건으로 접수했습니다. 저는 당황했습니다. 정당한 의문 하나가 형사사건으로 이어지는 게 과연 타당한가?
며칠 뒤 보험사로부터 상대방이 입원했고, 고액의 합의금을 요구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담당자가 여러 번 바뀐 끝에 결국 보험사는 상당한 금액으로 합의했습니다. 저는 주 2회 정도 통원치료만 받고 있었는데도 경찰은 “출차 중이기 때문에 당신이 가해자고, 인적·물적 피해가 있으니 검찰에 넘긴다”고 했습니다.
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쓰는 자리에서, 다른 경찰관들조차 영상을 보고는 “이걸 왜 사건처리 했지?”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싸운 것도 아니고, 상대방도 사건화를 원하지 않았는데 왜 이런 결정을 내리시는 건가요?”
경찰은 “절차상 그렇게 하게 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억울함, 나만의 일이 아닙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적 경험이 아닙니다.
평범한 시민이 자의적 판단과 불명확한 절차 속에서 억울함을 겪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줍니다.
첫째, 경찰의 형사사건 처리 기준은 지나치게 자의적입니다.
현장에서 어떤 말이 ‘다툼’으로 오인될지 모릅니다. 설명이나 질문조차 형사처벌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경미한 사고에도 과도한 입원과 고액 합의금 요구가 반복됩니다.
보험료는 오르고, 정직한 시민이 부담을 떠안게 됩니다.
셋째, 공권력은 충분한 설명 없이 절차를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절차상 그렇게 되어 있다”는 말은 시민에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시민은 법적 권리보다 관행 앞에 무력해지는 순간이 많습니다.
제도는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이런 억울함을 막기 위해선 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사건 처리 기준을 공개하고, 경찰이 사건 접수 시 서면으로 사유를 고지하도록 의무화해야 합니다.
경미한 사고의 입원과 합의금 기준을 엄격히 관리하고, 과도한 진료에 대한 제재와 환수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공권력은 설명 책임을 져야 하며, 시민이 불복할 수 있는 절차를 명확히 알려야 합니다.
이 사건은 다행히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었고, 형사기록도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왜 나만 억울해야 했는가”를 되묻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른 시민에게도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가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정당한 질문이 범죄가 되지 않도록,
정의는 권력보다 상식에 가까워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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