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민주주의를 위하여 - 김종철 -

뉴스/평창뉴스

by _(Editor) 2022. 11. 4. 01:33

본문

300x250
반응형


새벽 네 시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람들은 안다. 어느 날 이 시스템이 붕괴될 것임을. - 존버거 -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산업국가들에서 출산율이 낮은 것은 일반적인 경향이지만, 지금 한국에서 그 경향은 비상사태라고 할 만큼 심각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그리 멀지도 않은 장래에 한국인이라는 종족 자체가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러한 인구감소 추세를 기반으로 해서는 복지국가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도, 산업국가로서의 현상 체제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좀 더 현실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출산율 저하를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생태적 수용능력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고려할 때, 인구감소 추세가 반드시 나쁜 것인가 하는 것은 좀더 철저히, 다각적으로 검토해봐야 할 테마이다.

그러나 그러한 논의와는 별도로,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는 목소리의 배후에 있는 본질적으로 공리주의적인 사고방식과 인간관이다. 즉, 출산율 저하에 대한 우려가 주로 산업국가 내지 복지국가로서의 체제 유지에 필요한 인력-노동자, 병사, 소비자, 납세자, 연급 불입자, 보험가입자 - 이 부족할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해 있다고 한다면, 이 논리에 우리가 선뜻 동의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한다면, 그리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는 개인 각자를 그 자체로 존엄함 인격적인 존재로 여긴다면, 이것은 쉽게 말하기도, 듣기도 거북한 논리이다. 따져보면, 이러한 논리 속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심히 모멸적인 시선이 들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누구든지 국가나 자본 혹은 복지체제에 이바지하기 위한 도구나 수단이 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람들은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발언 속에서 개인의 존재를 다분히 도구시하고, 그럼으로써 인간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무례함과 몰이해를 드러내면서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인생까지도 비하하는 기묘한 결과를 빚어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늘의 상황에서 출산율 저하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좀더 헤아려보려는 자세이다. 사실, 관점에 따라서는 출산율 저하라는 현상 자체는 나쁠 수도 있고, 좋을 수도 있다. 다만 이 시점에서 왜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그게 바람직한 것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검토해볼 만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아이를 갖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일차적으로, 또 궁극적으로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지 국가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국가와 자본이 주도하는 시스템 속에서 어떠한 사적인 영역도 이 시스템의 영향이나 압력을 벗어나 있을 수는 없다. 저출산 현상이라는 것도 예외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청춘남녀가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을 하거나 하지 않은 채, 아기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인생 사업이지만, 그것은 시대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고, 표출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오늘날 왜 결혼을 망설이며, 아기 낳기를 꺼려하는 젊은 이들이 급증했는가 하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오늘날 수많은 젊은이들이 출산을 단념하는 무엇보다 큰 이유는 지금과 같은 시스템 속에서는 아기를 안심하고 낳아 기르는 게 불가능하거나 감내하기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혹은 전통적인 인간관이나 윤리관에서 이탈한 젊은 세대의 감각으로는 이제 아기를 낳아 양육하는 것에 그다지 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기는 핵가족이 주류가 된 한국사회에서, 안정된 직장, 소득, 집이라는 가족생활의 일차적 요건을 확보하는 일마저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아기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점점 모험에 가까운 일이 되고 있다. 거기다가 아이들이 헤쳐나가야 할 극심한 교육지옥을 감안하면, 아기를 낳을 엄두를 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무책임한 범죄행위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아기를 낳고 기르는 부모나 어른의 입장에서 출산문제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야 할 아이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이 사회가 아이들을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 우리가 매일 듣고 있는 이야기들 가운데서도 실로 기막힌 최근의 한 증언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의 삶이나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근원적으로 망가뜨리는 파괴력은 결국 동일한 시스템 작동 원리에서 나온다. 그것은 약자들의 희생없이는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자본의 논리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국가의 논리가 결합된 '폭력'의 메커니즘이다. 그 폭력은 대체로 시민들에게 법과 규율의 준수를 강제하는 일상적인 권력으로 나타나지만, 때때로 숨겨진 발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야만적인 폭압을 자행한다.

글: 녹색평론 서문집(김종철) '민주주의를 위하여(2) 에서 김종철 선생님의 글을 발췌하였습니다.

김동미
foresttory@naver.com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