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이 가장 많이 살았다는 초가집은 우리나라 농촌 어디서든 볼 수 있었던 서민들의 집으로 지붕을 새, 갈대, 짚 등으로 엮어서 얹기 때문에 기와집처럼 세련된 모습은 아니지만 초가지붕의 둥글고 울퉁불퉁한 모습이 보는 사람을 편안하고 포근하게 해 준다.
집은 새, 갈대, 짚 등을 섞어 바른 진흙 벽으로 단순하고 소박하며 큰방, 작은방, 부엌과 헛간이 대부분 옆으로 나란히 한일(一)자 모양으로 붙어 있는 모습이다. 다락은 안방의 아래쪽 벽 위쪽에 설치된 것으로 꿀단지 같은 귀한 음식에서부터 여러 가지 살림살이에 필요한 물건들을 보관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이것을 응용한 것이 붙박이장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한옥의 처마와 기둥, 난간 등은 모두 부드러운 곡선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고, 자연물의 무늬를 이용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위해 노력했다.
평창군 평창읍 지동리에는 1820년대에 지어진 초가집의 형태를 유지하고 보수해 맥을 잇는 윤봉태, 최선희부부가 살고 있다. 옛 초가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옛집. 귀하게 느껴졌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궁이가 있던 부엌 자리를 현대식으로 바꾸고, 난방을 기름보일러로 바꾼 것뿐.
윤봉태 씨: 다른 사람들은 다 집을 새로 지으라고 했는데 저는 여기가 좋았고 이 집이 좋았어요. 어떻게 보면 옛것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옛것과 옛날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지요.
부부는 옛 초가집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큰 노력을 했다. 높은 문지방을 낮추는 대신 문은 그대로 사용하며 모자란 부분은 덧대는 방식을 사용했다. 문지방을 낮추면서 나온 쑥대발은 다시 살려 벽걸이로 만들었다. 기존의 벽은 새와 흙으로 개어 덧발랐다. 집 앞 툇마루 아래 디딤돌은 마을에서 주워 온 돌을 쌓아 만들었다. “집 댄(뒤)에 담이 하나 있어요. 용도는 초가를 교체할 때 밟고 올라가던 거였는데 그대로 보존했어요,” 그렇게 옛집을 유지하겠다 마음먹은지 10년 만에 옛집이 추억을 간직한 채 다시 태어났다.
한옥 주변의 건물도 모두 부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마당 앞 소가 살던 곳, 집 옆 소가 살던 곳을 수리해서 농기구 창고와 오픈부엌으로 만들었다. “소 우사도 (주위에서)헐라고 했는데 제가 저 앞이 보이게 가운데를 넥산 재질을 이용해서 투명하게 만들었어요. 집 안 창가나 툇마루에 앉아서 보면 큰 길까지 보여요. 건물을 헐지 않고 저 바깥을 보이게 만들었어요. 밖에서는 불빛 정도만 보여요. 생각이 달라도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아이디어가 생겨요. 그렇다고 전적으로 수용해서 다 부쉈다면 후회했을 것 같아요.”
윤봉태 씨: 집을 수리하는 과정에 방문했던 분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옛날 집을 살리려는 것도 흥미롭지만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집을 수리하는 것이 더 인상적이라고 하더군요. 여러 형제들과 가족들이 모여 의논하고 힘을 모아서 같이 일을 했지요. 전문적으로 건축을 하시는 형과 문을 짜는 실력을 갖춘 매형이 전문적인 일을 하셨고, 저희들은 벽을 바르고 처마를 만드는 일 등을 했지요. 일을 하며 옛날 생각도 떠올리며 힘들지만 즐겁게 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이웃에서 카페를 운영하시는 두 분의 조언과 안목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윤봉태 씨: 보통 이층집을 생각하는데 저는 이층집이 재미없는 거예요. 집은 좋아 보이지만 뭔가 얘기가 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사진찍기를 좋아하는데 사진에 관한 얘기를 한마디로 한다면 ‘사진은 이야기다’라는 표현이 제가 들은 말 중에 제일 와 닿더라고요.
꽃 사진을 찍어 놓고 꽃이 예쁘다. 구도가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이걸 보고 옛 생각이 난다던가, 하는 얘기 말이죠. 요즘 집들은 그런 얘기가 안된다는 거에요. 흔한 이층집을 찍어놓고 보면 증명사진 같다는 거에요. 옛집은 그 자체가 이야기가 되는 거죠. 그런 얘기를 가지고 옛집을 만들면 좋겠지요.
윤봉태씨: 집을 옛날 형태를 살리면서 수리한 후의 소감은 어머니의 말씀으로 대신할게요. 집수리가 다 끝나고 처음으로 가족들이 이 집에 모였을 때 어머니께서는 “꿈만 같다” 고 하셨어요. 이 말씀이 두고두고 생각이 나요.
어머니도 여기 집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 힘들었던 일들이 영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 같아요. 나무 때느라 연기 나고, 물 길어다 먹고 도랑에서 빨래하던 일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생각이 나는데 완전히 딴 세상이 되었으니 꿈만 같다고 하셨겠지요. 그래서 저도 가슴이 뭉클했어요.
부부의 집에는 참 많은 사람이 다녀간다고 한다. 저는 ‘삶사람’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사람이 삶이고 삶이 곧 사람이다.” 집의 완성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도 사람이 없으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집은 사람이 있어야 채워지는 거죠. 저희 집을 방문해서 묵었던 분들이 다음날 하는 얘기는 대부분 “너무 잘 잤다.” 는 거에요.
“잘 잤다”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 터가 좋다는 얘기도 많이 하세요. 좋은 건 해가 일찍 들고 늦게 져요. 골바람은 집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동쪽으로 지나가요.
부부는 집앞의 정원과 텃밭도 가꾸고 있다. 저희 부부가 평창의 선미화 작가에게 그림그리기 강좌를 들었어요. 그림을 배우면서 집의 야생화와 작물들을 참 많이 그렸죠. 야생화, 허브, 산나물, 일반 텃밭 식물을 키워요. 돌을 쌓아서 허브동산을 만들어 허브를 키우고, 주변에는 야생화를 심었고 붓꽃 길도 만들었어요. 캣잎이라는 허브는 이른 봄부터 연중 피어요. 집 서쪽으로는 자작나무길도 만들었어요. 남편 윤봉태씨는 평창 미화작가에게 그림을 배운 솜씨로 멋진 정원과 텃밭 설계도까지 그렸다.
최선희씨: 복수초도 사다 심었는데 이른봄이 되면 복을 주려고 꽃이 잘 피어요. 두메부추가 돋아나고 미나리, 참나물, 와사비도 자라지요. 와사비는 잎도 와사비 맛이 나고 잘 번져요. 민들레, 카모마일, 레몬밤도 있고 캣잎은 이웃 고양이가 참 좋아해서 자주 와요. 아스파라거스, 백리향, 밤나무, 원추리, 길가에 붓꽃, 화살나무도 있고 오미자, 고사리, 산마늘 등 산나물을 다양하게 심었어요.
“공간이 달라지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운명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지요.
옛집을 살린 후 부부의 삶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집을 변화시킨 후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요. 여러 곳을 여행하며 영감을 얻는 요리사와 나무로 달항아리를 만드는 작가를 비롯하여 지인들과 친구 등 참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들이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줘요. 그런 시간들이 참 소중하고 행복합니다.
최선희씨: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나무가 좋아졌어요. 나무를 이용해 그릇을 만들고, 테이블을 만들고 그냥 나무를 키우기도 하고 삶이 자연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할 때 느끼지 못하던 거죠. 나무로 된 그릇을 쓰다가 부러지거나 못 쓰면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삶, 농약을 치지 않고 비닐을 씌우지 않고 농사를 짓는 삶, 토종씨드림 회원이 되어 토종 씨를 받아서 직파로 농사를 짓는 삶 등 지금도 저희 부부를 계속 변화시켜 주고 있어요.
옛집을 살린 공간이 저희 부부의 삶을 더 많이 행복하게 해 주었습니다.
글: 김동미
메일:foresttory@naver.com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