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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 허순애작가 - 공명(共鳴)의 집에서

뉴스/문학의창

by 편집장 _(Editor) 2020. 10. 22.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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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소소한 일상들이 혼돈 속에 일그러져 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이 들끓고 있는 즈음에 서울에서 인제로 이사를 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피해서 온 것이 아니다. 25년의 집시 같은 삶을 정착하기 위해서 꾸러미 꾸러미 사연들을 싣고 온지 두 달 째다.

 

벌써 십사년 전의 일이다. 한 겨울, 한민족의 시원이라고하는 바이칼호수를 찾았다. 블루와 짙은 인디고의 물빛처럼 차가운 겨울의 심장, 내면에 얼어붙은 깊은 시린 삶의 편린들, 거센 시베리아의 바람과도 맞서보고 싶었다. 바이칼호수는 그렇게 나의 근원을 통채 흔들며 다가왔다. 울란바트로에서는 징키스칸을 만났다. 시베리아의 파리라 일컫는 이리쿠츠크에서는 데카브리스트 중 한 사람인 발콘스키의 친척인 톨스토이와 그의 작품전쟁과 평화를 생각했다. 푸슈킨이 그 유명한 시를 잉태한 동토(凍土)의 땅, 한 모퉁이의 길거리에서는 학창시절 뜻도 모르고 외웠던 시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일순간에 지나가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또다시 그리워지는 것이려니 푸슈킨의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일부

 

영하 40도로 급습한 칼바람은 늦가을 바이칼호수의 물결을 미처 가라않지도 못하게 했다. 그대로 꽁꽁 얼어버리게 한 파도 모양은 한 폭의 풍경화로 박제되었다. 차창 밖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부리야트족들의 소망의 빛 바랜 깃발은 언제부터 저렇게 흩날리게 되었을까? 나도 덩달아 브리야트족이 되어본다. 성황당 길이었다. 알혼 섬으로 향하는 우와직이라는 소련제 군용차에 몸을 싣고 얼음호수 위을 달린다. 광활한 동화 속 얼음나라에서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들이 튀어 나올 것만 같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샤머니즘의 상징인 부르한 바위에 우두커니 앉아본다. 영기(靈氣)가 세게 느껴진다. 너는 누구냐? 너의 정체성은? 나는 꼭 쥐고 있던 무감각해진 주먹을 놓아버렸다. 석양빛은 서서히 바위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알혼 섬에서 제일 큰 마을은 후지르다. 그 마을 중간에 위치한 니키타 하우스인 숙소로 향했다. 러시아식의 목조건물로 세월을 두고 잇따라 이어 지어진 건물임을 한 눈으로 알 수 있었다. 알흔 섬은 제주도 크기의 절반가량이다. 부리야트족의 고향인 이 마을 사람들은 피부색과 외양도 우리와 비슷하다. 러시아의 밤은 성질이 급했다. 금방 어두움을 데리고 왔다. 일행들은 러시아식 음식과 반야(러시아식 사우나)를 즐기느라 시장터 같이 시끌벅적한 소리로 숙소를 가득 채웠다. 몇해 전, 업무차 핀란드에 가서 자작나무 숲속에서 체험한 핀. 우드로 만든 사우나는 현대식이라면 여기는 투박한 시골 냄새가 묻어나는 옛날식 그대로이다. 낯선 이방인들 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남자, 그는 이 집의 주인임에 틀림없었다. 나도 모르게 그의 향방에 무의식적으로 안테나가 켜졌다. 나도 이와 같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잠이든 고요한 시베리의 밤은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공연이 끝난 텅 빈 무대를 돌아 보듯 이 나는 숙소를 맴돌고 있었다. 담벼락 한 모퉁이에 소복하게 쌓아둔 잔설마져도 빙하처럼 굳어버리게 한 이 위력, 그 추위에 내 걸음도 서둘러졌다. 안내 데스크의 안온한 전등 불빛이 나를 이끈다. 공연장의 문지기 같은 이가 베치카 앞에서 불을 지피고 있다. 그는 ‘Nikita Bencharov’ 였다. 우리는 감각적으로 서로를 알아차렸다. 다양한 언어들로 장식 된 방문 게시판 앞에서 그와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시간은 여행의 큰 보람이었다.

 

그는 1960년 생으로 All-Russi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탁구 금메달리스트였다. 혜택 받은 사랑을 나눔실천으로 하기 위하여 오지인 알흔 섬으로 1989년 찾아들어 왔다고 했다. 시골 마을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합쳐진 오지 학교에서 관혁악 5중주단을 만들고 그 선생님들은 여행자들로부터 숙식을 제공해 주는 조건으로 1년에서 6개월 까지 도움을 받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중주단원들을 데리고 전국콩쿠르대회는 물론 유럽순회 공연까지도 다니고 있다. 그와의 대화는 긴 침묵으로 혹은 간간히 단답형으로, 때로는 타닥타닥자작나무타는 소리로 대신 이어져 나갔다. 큰 바위같은 분과 함께 앉아 있었다. 여명의 새벽빛이 감동의 전율로 나를 일깨운다. 말없이 그와 깊은 포옹을 나누면서 나는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 시간 세입자에게 맡겨진 공명의 집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사방이 창으로 이루어진 집은 새 순들이 앞다투어 창 틀에서 춤을 춘다. 밤나무, 층층나무, 자작나무, 벛꽃은 두팔 벌려 환영하듯 나를 안아준다. 수리 하는 사이에 앵두꽃도 화들짝 피었다. 죽은 듯 늘어져 있던 다래나무 줄기는 창밖에서 삐진듯이 늦게 고개를 내밀었다. 조바심치던 접시 꽃도 한쪽에서 잘 크고 있었다. 여학생의 머리칼을 닮은 반들반들한 부추밭도 있다. 주인이 온 것을 아는 것일까?

집 밖 세수는 못시키더라고 내부만이라도 우선 단장을 했다. 하루 두세 시간의 수면으로 두 달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꿈결 같다. 황금색의 세포가 춤을 춘다. 아무런 계획 없이 무의식적으로 행동에 옮길 따름이다. 실평수 20평의 1층 공간이 작은 문화센타같이 꾸며졌다. 유듀브에서는 마침 1939<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영화 주제곡이 흘러 나온다. 마지막 장면의 명 대사가 떠오른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 오를 테니까강인한 여인 스칼렛 오하라 (비비안 리), 나도 그런 그녀를 사랑한다.

 

제일 먼저 이 집에 수필가 맹난자 선생님을 모셔왔다. 내겐 부모 같은 분이시다. 어느 스산한 11월말, 낙엽은 이리 저리 거리를 어지럽히고 있는데 길 건너편에서 선생님은 두툼한 쇼핑백을 든 채로 서 계셨다. 문정동 로데오 사거리의 신호등은 그날 따라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지... 옷을 몇 벌 챙겨서 부르셨던 것이다. 내가 가장 추운시절이었다. 등대 같이 서 계시던 그 사거리, 지금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눈에 보이지 않은 세계에 촉각을 세우고 빛 공부에 열중인 모습을 보신 선생님께서는 이 집 이름을 공명(共鳴)의 집이라고 명명(命名)해 주셨다. 상대와 내가 하나되는 화음(和音)을 일러 주셨다. 사전에 보면 공명(共鳴)남의 사상이나 행동 따위에 깊이 공감하여 함께하려는 생각을 가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기운과 사물들, 그들과 나의 시선이 중첩되어 공명을 일으키는 꿈을 꾸어본다. 내 소명의 빛은 그들과의 떨림과 울림, 언제나 그 미세한 하모니를 이 곳에서 실천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춥고 방황하는 이에게 희망의 빛을 지펴주고 싶다. ‘공명(共鳴)의 집에서 나는 후지르 마을의 니키타를 떠올려 본다.

 

▶ 글 : 허순애 

 · 평창신문 고문

 · 컬러애널리스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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