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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숲과인문학] "산에는 산신령이 진짜 있는 것일까?"

기획

by 편집장 _(Editor) 2020. 10. 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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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젼이 없던 라디오가 유일한 전파 매체였던 시절에 "전설 따라 삼천리"라는 프로그램이 아주 인기가 많았다. 특히 중간마다 해설을 하는 유기현이라는 성우의 구성진 목소리를 여러 사람들이 성대모사로 따라 하곤 했다. 나도 대학 시절 카니발 축제 때 장기자랑 코너에 참가하여 전설 따라 삼천리의 유기현 성우의 성대모사를 연기하여 인기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스토리가 좀 황당하기는 하지만 주로 귀신이나 산신령 또는 천년 묵은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구미호, 오백 년 된 지네, 몇백 년 묵은 구렁이 등등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얘기겠지만 그 당시 산골에 살았던 나는 학교에 갈 때나 심부름을 하러 갈 때 무서운 산길을 가야만 하였고 그때마다 라디오에서 들었던 온갖 무서운 귀신이나 사람으로 변신한 귀물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오금이 저렸던 생각이 지금도 지워지지를 않는다.

그러한 귀신이나 마귀들보다 산신령은 항상 정의의 편에 서서 결정적인 위기 상황에 나타나 모든 악귀를 물리치고 힘없고 착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어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스토리가 많았다.

일반 악귀나 귀신들의 형상은 각양각색으로 나타나지만, 산신은 항상 흰 도복에 지팡이를 짚고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가끔은 호랑이를 호위무사로 거느린 모습이다. 부처님을 모신 절에도 산신당이 따로 있는데 이곳에도 호랑이를 곁에 거느린 모습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선 시대에 율곡 이이 대감댁을 지나던 노스님이 어린 율곡이 노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앞으로 나라의 큰 인물이 될 아이이구나! 그런데 허허.. 머지않아 호랑이에게 물려갈 상이로구나 참 안타까운지고"  혼잣말을 하는 얘기를 들은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은 스님을 붙잡고 호환을 피할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절하게 애원했다.  그러자 스님은 뒷산에다 밤나무 천 그루를 심으면 호환으로부터의 재앙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알려주었다. 그 후 율곡의 가족은 천심을 다하여 밤나무 천 그루를 심었다. 세월이 흘러 이윽고 산신령으로 변신한 호랑이가 와서 율곡을 데려가려고 하자 율곡의 부모님은 밤나무 천 그루를 심었으니 제발 살려 달라며 함께 나무를 세어보자고 제안하였다. 그런데 세어보니까 글쎄 두 그루가 말라 죽어 998그루만 남아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옆에 있던 나무가 '나도밤나무 입니다' 하였고 옆의 나무한 태도 '너도밤나무 잖아'라고 우겨서 결국 율곡은 호환을 피하여 나라의 큰일을 하게되며 살 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율곡 선생님의 호를 율곡(栗谷) 밤 율, 굴곡 자를 따서 율곡으로 지었으며 동네 이름도 밤나무골로 불리었다고 한다.

<물푸레나무>

물푸레나무에 얽힌 신령에 대한 얘기로 옛날 어느 마을에 지독하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소년이 살았는데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아주 열심히 일하여 어렵게 송아지를 한 마리를 사서 키워 황소가 되었다. 소년은 그 소를 농사짓는데 부리느라고 물푸레나무 회초리로 수없이 때린 것이 후회되어 다시는 소를 때리지 않겠다고 맘먹고 그 물푸레나무 회초리를 논둑 가장자리 구석에 꽂았다. 그런데 이것이 뿌리가 나고 자라서 큰 나무가 되었으며 이 나무에 소원을 빌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는 신목이 되었다 한다.

 

신령과 나무에 얽힌 전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너무 많은 것 같다. 세계 여러 곳의 신화는 대부분이 나무나 숲에서 시작되었고 한다. 북유럽 최고의 신인 '오딘'은 물푸레나무로부터 남자를, 느티나무로부터 여자를 창조하였다고 전해진다.
인간의 삶을 지배하였던 신들은 '숲의 정령' '나무의 정령'으로 불리어 숲에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의학의 시조로 불리는 기원전 4세기 히포크라테스는 물푸레나무의 잎과 열매와 껍질로 각종 질병을 고쳤고, 동양의학에서도 물푸레나무가 해열제, 통풍, 류머티즘, 신경통 치료에 쓰였다고 한다.

<소나무>

또한 나라마다 신성시한 나무도 각각 달랐다. 게르만 민족은 참나무, 로마인은 층층나무, 북미 원주민은 붉은 삼나무와 세쿼이아, 이집트는 무화과나무,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세네갈은 판자 나무, 비단 목화 나무, 소나무는 한국·중국 일본이 모두 신성시하는 나무이다. 또한 마을 어귀에 있는 당산나무나 서당나무는 하늘의 수호신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통로라고 믿어 왔다.

고대 초기의 철학은 자연철학이었고 숲으로부터 철학이 탄생하였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아테네 교외에서 백성들에게 학문을 가르친 곳이 올리브나무가 울창한 숲의 이름이 바로 아카데미이였는데 이 명칭은 오늘날 미술 문학 음악 과학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학교나 단체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산신령은 산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걸까? 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장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예를 들면 봄이 되어 나무에 잎이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를 퍼뜨려 종족을 번식시키는 것들이 모두 산신령의 명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봐야 할 것이고 삼단논법으로 해석한다면 산신령은 곧 자연이 되는 셈이 되는 게 아닐까? 

 

낮과 밤이 있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서 있게 이어지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불은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수승화강의 원리가 세상의 순리이고 이치이므로 이것을 자연스럽게 따르는 것이 인간이 따라야 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순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 나무, 풀, 곤충 그리고 야생동물 등은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자연의 일부로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살아가는데 유독 인간만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과연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는걸까, 아닐까?

만약 아니라면 왜일까? 자연 속에서 우리의 존재는 과연 어떤 존재로 봐야 하는 걸까?

인간은 자연을 인간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부속 존재로만 보기 때문에 자연을 지배하려고 욕심을 내기 때문에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욕심은 자기가 하는 일의 값보다 더욱더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고 욕심이 많아지면 집착이 되고 집착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욕심으로 끝까지 놓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집착하다 보면 생각이 묶이게 되고 집착이 계속되면 죽은 후에도 한이 되어 구천을 떠돌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욕심으로 살지 말고 하늘의 순리를 따르며 마음을 갈고 닦고 노력하며 사는 것이 가장 바르게 사는 순리의 길이라고 본다.

법정 스님은 말씀하셨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 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모두가 한때일 뿐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그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라고 설파하셨다.

산신령이 숲속에 있든 없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신령, 즉 양심의 신령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나 자신이 바로 신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 글 : 김수헌

 · 2020년 국전우드버닝부문 은상 수상 

 · 2019년 한국사이버원예대학 생태공예과목 강의

 · 2019년 산림청 산림복지진흥원에서 전국 유망 유아숲체험원 탐방 선정

 · 2019년 개웅산유아숲체험원 우수지도사 구로구청장 표창 

 · 2018년 국립수목원 우리산림 바로알기 탐험경진대회 우수상

 · 2018년 서울시 생태공예공모전 작품 선정 및 시청 전시 

 · 17,18년서울시 공원 숲해설 만족도 조사 2년 연속 1위

 · 숲해설가, 유아숲지도사 

 · 노동문화제 미술부문 노동부장관상, 인천시장상 

 · 국토통일백일장 최우수 국무총리상

 · (주) 에이스건설, 에이스종합관리 대표이사 

 · 서울대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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